야스꾸니 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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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까소네」수상을 비롯한 일본전각료들이 지난 15일 「야스꾸니(정국) 압두」 에 참배했다. 2차대전 종전후 처음 있는「공식참배」라는 점에서 내외의 비삼한 관심을 끈다. 이에 앞서 동경 무도관에서 벌어진 전문인 추모식에는 「히로히몬 (유인) 천황까지 참석했다. 모두가 일본 주변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움직임이다.
야스꾸니신사는 1869년(명치2년)에 초혼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됐다. 명치유신에 공적을 세운 일본인 3천5백88위의 위패가 봉안됐다. 10년후 이름을 야스꾸니신사로 바꾸면서 지금까지이 사당에는 2백40만위의 영령이 봉안됐다.
일본이 군국화하면서 이곳은 군국주의의 상징이 돼왔다. 해마다 천황과 국민들이 여기에 참배하고, 군인은 죽어 여기에 봉안됨을 무삼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신사참배를 순수한 일본 국내의 행사로 여기면 별 문제 없겠으나 한국인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봉안된 넋들이라는 것이 「좌하의 난」 (1874년) 을 빼곤 모두 한국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1877년 「사이고」 (서향) 는 정한론을 주장하다 정계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반정부 포훈을 일으켰다. 이른바 서남전쟁이다. 그도 복권되어 여기에 봉안뵀다.
일청·일용전쟁은 일본이 한국 지배권을 둘러싸고 중국 러시아와 벌인 전쟁. 여기서 죽은 일본인의 넋도 야스꾸니에 었다.
특히 2차대전에서 죽은 일본인이 여기에 봉안돼 국가적 추모를 받는 사실에 한국인들은 의혹과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수 없다. 강요된 신사참배를 더없는 굴욕으로 느꼈던 한국인이 아닌가. 침략전쟁의 희생자들올 추모하고 그라워함은 미래의 일본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
야스꾸니신사참배는 종전후 금기로 돼왔다. 그러던것이 일본 경제력의 부흥과 더불어 비공식적인 참배가 눈에 띄더니 이젠 드디어 공식적인 행사가 됐다.
그러지 않아도 일본매스컴의 복고주의 무드조장, 교과서 왜곡사건, 일본의 군쟁대국화등은 주변 국가의 신경을 거술려 왔다.
일본인의 이런 움직임을 불안해 하는것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다.
작년9월 미국을 방문한 「마르코스」 필리핀대통령은 NBC, TV에 출연, 일본의 현실이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물론이다. 일본이 자위능력을 갖춘후에 무슨일을 했는지 알고있지 않은가]
같은해 10월 「수하르토」인니대통령도 『미국이 일본에 「자위능력이상의 방위력 증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의구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8·15를 「종전일」에서 「전몰자 추도및 평화를 기념하는 날」 로 바꾸었다지만 일본의 전몰자는 불행히도 평화와는 전혀 거리가 먼것은 분명하다.
수있는 곳은 따로 있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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