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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위생 위해 포경수술? 틀린 말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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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대식 교수는 “본업은 물리학 연구라는 것을 꼭 적어 달라”고 했다. 김 교수는 나노세계에서 움직이는 빛의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초등학교 시절 내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포경수술을 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서울대 김대식(52)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국내에 손 꼽히는 물리학자다. 서울대 학술연구상(2012년), 한국과학상(2013년) 등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물리학 분야에서 국가석학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물리학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국제학술지(SCI)에 실린 논문 4편을 갖고 있다. 논문의 주제는 ‘포경수술’. 영국 비뇨기학회지에 한국의 포경수술의 실태에 대한 논문 4편(1999년, 2001년, 2007년, 2012년)을 실었다.

김 교수는 최근 ‘포경수술 바로알기 연구회(포바연)’와 함께『포경유감』이라는 책을 냈다. 해외의 포경수술 상황과 포경수술 관련 각종 연구 성과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 교수는 포바연의 회장이다. 중앙대 방명걸 동물자원과학과 교수, 성교육 강사 구성애씨,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 등이 포바연의 회원이다. 김두식 교수는 김 교수의 동생이다. 지난해 4월 함께 한국의 교육 현실 등을 비판한『공부논쟁』이라는 책을 내 화제가 됐다.

김 교수가 포경수술에 관심을 가진 건 초등학교 시절부터다. 또래들이 너도나도 “고래 잡았다”며 포경수술을 받은 걸 자랑하던 때였다. 그는 “조상들은 머리카락도 함부로 자르지 않았다는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포경수술을 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가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85년 미국 유학을 하면서 포경수술이 전세계 공통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됐다고 했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그 많은 국적의 학생들 가운데 포경수술을 한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선진국 남성들이 위생을 위해 포경수술을 한다는 통념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죠.”

그의 포경수술 연구는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화 됐다. 1999년 PC통신 게시판에 세계 포경 수술 지도를 올린 게 시작이다. 미국·한국·필리핀 등 일부 국가에서만 포경수술이 보편화돼 있다는 내용으로 논란이 벌어졌다. 김 교수는 “온라인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보다 학자답게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포경수술 관련 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김 교수는 한국에선 1945년 해방 이후에야 포경수술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파고다 공원 등에서 1년간 5000명의 남성을 인터뷰했다. 이 연구로 해방 이전에는 포경 수술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 교수는 이 내용을 정리해 2001년 영국 국제 비뇨기학회지에 ‘현저하게 높은 남한의 포경수술 비율 : 역사와 원인’이라는 논문을 실었다.

2007년에는 포경수술이 성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도 설문조사를 통해 연구했다. 지금도 본업인 물리학 연구를 하며 틈틈히 포바연 회원들과 함께 한국의 포경수술 현황 등을 연구하고 있다. 김 교수는 포경수술 반대론자다.

“혀를 잘 닦지 않으면 냄새도 나고 충치도 생기지만 혀를 자르진 않잖아요. 위생상의 문제가 있다고 무조건 포경수술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김 교수는 포경수술을 했을까. “개인 사생활이니 노코멘트”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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