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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불우 청소년에 권투로 희망 선물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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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동선 경사(아래)가 세계 챔피언이 된 제자 최용수씨(위)를 무동 태운 채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서경찰서 신동선(50) 경사는 낮에는 수갑을 든 경찰관으로, 밤에는 글러브를 낀 권투 코치로 '이중 생활'을 한다.

그는 벌써 19년째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권투를 가르치고 있다. 개중엔 자신이 검거한 소년범들도 있다. 그의 지도로 권투를 익힌 제자 300여 명 중 세계챔피언도 탄생했다. 전 WBA 수퍼페더급 챔피언 최용수, 전 수퍼라이트급 동양태평양 챔피언 김종길이 그의 제자다. 그래서'챔피언 제조기'란 별명도 붙었다. 얼마 전엔 같은 경찰서에 근무하는 양경진 의경을 프로에 입문시켜 우승하게 하기도 했다.

신 경사가 권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68년. 순경 시절이던 85년 대통령배 복싱대회에서 챔피언에 오른 뒤 은퇴했다. 하지만 그의 권투 실력을 알아본 서울 화곡동 주민들이 힘을 모아 이듬해 체육관을 열어줬다. 그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권투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코치로 변신했다.

그는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불우 청소년들에게 권투를 가르쳐 희망을 불어넣어준 것은 물론 공부까지 시켰다. 제자 중 30여 명의 학비를 지원해 대학에 보냈다. 그런가하면 영세민 생활비로 남몰래 3000여만원을 내놓았고, 형편이 어려운 범죄 피해자 가족 30여 명에겐 일자리를 알선해주기도 했다. 그는 "경찰이 지역의 안전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랑에도 앞장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경찰 업무에 소홀했던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행정자치부 장관.경찰청장 등으로부터 66차례 표창을 받을 만큼 성실하게 근무했다. 교도소 재소자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등 자신이 검거한 범인들의 교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랜 경찰 경험을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가다듬어 '유치장 면회가는 길'이라는 시를 97년'문학세계'에 발표, 신인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신 경사는 현역 권투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링에 오를 때는 반드시'경찰'이라는 문구가 쓰인 유니폼을 입는다. 자신의 권투 활동이 경찰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그는 "링 위에서는 물론 땅 위에서도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이웃과 나라에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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