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가피한 쌀개방, 국회점거는 정치 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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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노당과 농민단체들은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을 지켜본 뒤 연말쯤 비준안을 처리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때까지 쌀 수입을 막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비준안이 빨리 처리되지 않으면 올해 약속한 22만5000t의 쌀 수입 이행이 사실상 어려워져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준안 처리가 내년으로 미뤄지거나 외국이 쌀 수입 약속 불이행에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관세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DDA 협상 추이를 미뤄볼 때 10년간 관세 유예화를 골자로 한 현재의 쌀 비준안은 우리에게 훨씬 유리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DDA 협상에서 논의 중인 관세화 상한선이 도입되고 일부 국가들의 주장대로 75%의 관세가 적용되면 국내산 쌀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현재 가마당 15만원 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만~7만원대의 수입쌀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농산물 개방 압력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쌀 비준안이 통과돼도 오는 2014년에는 국내 쌀 소비량의 7.9%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또 협상에는 상대방이 있다. 우리가 원한다고 그들이 재협상에 나설지도 의문이다. 지금은 농민들의 감정에 편승해 비준안 처리를 미룰 때가 아니다. 시장 개방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도 촉박하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10년간 70조원을 쏟아붓고도 농업경쟁력은 뒷걸음질만 쳤다. 이제 민노당은 진정 농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냉철히 생각해야 한다. 협상 때는 팔짱을 끼고 있다가 뒤늦게 판을 뒤엎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