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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문을 닫은 사이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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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극히 '한국적'인 나는 연거푸 닥쳐온 '불운' 속에서 안절부절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문을 닫다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2주씩이나 교사들이 수업을 거부하다니! 이곳에서도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은 엄격한 법적 통제를 받고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고등법원에서는 교사들의 파업이 불법이라며 교사연맹에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는 한편 자산동결 명령을 내려 파업에 필요한 자금 공급을 원천봉쇄했고 파업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수사를 특별검사에게 맡기는 초강수를 내놓았다. 하지만 교사연맹이 제시한 타협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조세력의 연대파업으로 사태는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처음에는 기가 막혔고 분통이 터졌고 답답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이런 일들을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다. 그들은 일단 '참는다'. 상황을 인정하고 발언을 자제하며 추이를 주시한다. 학부모회 역시 조속한 타결을 종용하지만 어느 한편을 매도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학생들을 '볼모'로 잡았다느니, 일단 복귀부터 한 이후 협상을 진행하라느니 하는 여론의 뭇매와 압력도 없다. 언론에서는 '피해자'들의 아우성보다는 고용주인 정부와 교사연맹의 입장 차이를 분석하는 데 더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한다. 집 근처 초등학교 앞에서 시위하는 교사들을 응원하는 차량들의 경적 소리가 심상찮다 했더니 주민의 과반수가 파업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왔다. 당장에 본 '피해'와 상관없이 그들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봉합된 상처는 다시 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언젠가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실력을 행사할 때 누가 지원군이 될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의 눈에 경이롭기까지 한 인내심은 이들이 경험 속에서 얻은 교훈인 동시에 문화다. 몇 해 전 버스와 전철이 동시에 두 달간 파업을 했을 때, 이들은 카풀을 하며 당사자들이 충분히 협상할 때까지 '견뎠다'고 한다. 한 달간 짐이 도착하지 않는 동안 나는 아들과 함께 신문지 밥상과 박스 책상을 만들었고, 인터넷이 불통인 한 달 동안 인터넷 없는 세상의 고요와 평화를 경험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열 살짜리 아이와 종일 붙어있는 것이 얼마나 고행에 가까운 일인지는 아는 사람만이 알겠지만 아이가 있는 엄마들을 철저히 배려하는 직장과 다양한 임시 데이케어(daycare)는 모든 걸 학교에서만 배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불현듯 오래전 읽어 가물가물한 그람시의 말이 떠오른다. '지배'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사회와 달리 이성적이고 비강제적인 자유의지에 의한 시민사회는 '합의'를 통하여 작용한다는, 지극히 '한국적'인 나로서는 더없이 부럽고도 낯선 그 진리 말이다.

김별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