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극빚은 신흥사 주지 싸움의 언저리 해묵은〃물욕다툼〃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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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불교의 고질적 병폐인 사찰 주지자리 다툼이 마침내 살인극까지 빚어냈다.
소위 수입 좋은「노른자위」사찰로 알려진 설악산신흥사 주지교체를 둘러싼 승려들간의 흉기살인은 세속에 큰 충격을 주었다.
「불살생」을 제1의 기본 계율로 삼는 대승불교인 불교조계종의 이같은 추태는 동기나 경과의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한마디의 변명도 있을 수 없는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신흥사 주지다툼의 배경은 「염불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물욕의 노예가 불가에서 그처럼 경원시하는 탐·진·치의 삼악을 백일하에 드러낸 망발이다.
근래의 모든 불교분규가 이권을 노리는 주지다툼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세속의 물욕을 끊고 오도한 초월의 경지를 이루겠다고 삭발염의한채 출가한 승려들이 황금의 이권에 빠져들어 주지자리를 서로 맡겠다고 싸우다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작태는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말세풍조인 것이다.
이번 신흥사사건도 몇해전 폭력이 난무했던 악몽의 월정사 불국사주지싸움과 맥락을 같이하는 수입좋은 관광사찰 차지하기 다툼.
수입이 좋은 노른자위 사찰로는 경주불국사 (연간7억원), 낙산사(1억원)등이 손꼽힌다.
신흥사의 연간수입은 관람료수입1억2천만원, 사찰토지임대료 1억원등억원을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천여만평의 사찰소유 임야는「매각처분」의 가능성을 포함한 이권의 검은그림자-.
설악산일대가 관광명소화된 이후 사찰경내의 광활한토지는 호텔부지등으로 서울재벌들의 눈독이 집중된채 풍문의 설왕설래가 끊이질 않았다.
신흥사는 이같은 관광사찰로서의 관람료 토지임대료외에도 상당액의 불전수입을 갖는 노른자위 사찰이다.
따라서 신흥사주지자리는 많은 승려들이 기회만 있으면 서로 주지를 하겠다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동료 승려의 목을 찔러 살해한 비극을 불러일으킨 이번 신흥사주지다툼은 지난1월부터 불씨를 안고있었다.
조운영전임주지가 임기2년을 남겨 놓은채 신경성 고혈압으로 쓰러져 눕자 후임주지문제가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다.
중진승려들의 치열한 경쟁속에 급기야 건강을 이유로 운영스님의 자의반타의반 퇴진이 결정되고 7월13일 총무원 규정부장 김혜법스님의 후임주지 발령이 확정됐다.
신흥사측은 신임주지가 발령되자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S스님측과의 합세로 돌연 태도를 바꾸어 혜법스님의 부임을 반대하면서 춘천지법 속초지원에 「신임주지 출입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신임주지측도 이에 맞서 같은 법원에 「주지직무집행방해금지신청」을하고 법정투쟁으로 맞섰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사태를 우려한 당국이 경찰력까지 배치해놓고도 승려들의 교묘한(?)술책에 허를 찔린채 백주의 살인극을 빚었다는 것은 극히 부차적이긴 하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결과는 문공부의 개입으로 신흥사의 재산관리를 속초시장이 맡게됨으로써 주지다툼을 한 양측이 그처럼 갈망하던 주지자리를 모두 잃고 구속, 중상치료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불교 조계종은 치욕적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승단에 도사린 폭력을 뿌리뽑고 물욕에 찌든 주지다툼, 헤이한 기강을 바로잡은 참회의 일대 자체정화운동을 펴야하겠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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