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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수입금지 직전 한국대사에 불만 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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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산 제품에 대한 이란의 수입 보류 문제를 둘러싸고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란 현지에선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승인과 보류 조치가 교차하고 있다. 반면 이란 측은 "공식 수입금지 조치는 전혀 없다"고 부인한다. 그런 가운데 외교부는 주한 이란대사를 불러 들여 경위를 묻고, 이규형 제2차관을 다음주 초 테헤란으로 파견하는 등 사태 해결에 분주하다.

20일 외교부는 자한박시 모자파리 주한 이란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들여 경위를 물었다. 그러나 모자파리 대사는 "한국 상품 수입금지 조치 방침을 본국 정부로부터 통보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또 "한국 상품에 대한 몇몇 보류 조치는 관계 부처(이란 상무부) 내부 실무자들의 의견 차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전혀 심각하지 않은, 사소한 기술적 문제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란 현지의 상황은 오락가락하고 있다. 17.18일엔 냉장고 5000대(삼성전자)와 56만 달러 상당의 화학섬유 재료(라크 인터내셔널), 180만 달러 상당의 철강제품(대우 인터내셔널), PVC 10만 달러어치(LG) 등 5건의 승인이 보류됐다. 19일엔 상당수 품목에 대한 수입 승인이 났으나, 테헤란이 아닌 일부 지방에서는 보류나 거부 조치가 있었다. 또 18일 거부됐던 제품의 견적송장(최종 가격이 명시된 합의서)이 19일 다시 접수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느냐는 점이다. 이란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 수입 승인을 거부하거나 보류한 전례가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이 지난달 국제 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 사찰 결의안에 찬성한 데 따른 보복'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전면 금수 조치가 부담스러워 개별 조치로 불만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이란 언론의 보도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란 관영 IRNA 통신은 17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새로 부임한 임홍재 이란 주재 한국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는 자리에서 불편한 심정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한국이 이란의 주요한 통상.문화 파트너임에도 지난달 IAEA 이사회에서 한국 대표가 '이상한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는 것. 또 "한국보다 이란과 더 제한적 관계를 가진 나라 대부분도 IAEA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한국과 같은 동맹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규형 차관이 급히 테헤란에 가는 배경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예정돼 있던 유럽 방문길에 들르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KOTRA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이란의 한국산 제품 금수 논란은 이 차관의 이란 방문 뒤에나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서승욱.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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