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기획] 사내 아나운서 이미숙·박은주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요즘 TV 채널을 돌려 보면, 아나운서들이 참 많이도 나온다. 뉴스 시간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오락 프로그램들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도 그렇다. 아나운서 이름 한둘 눈에 띄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해 보일 정도다. 그런데 이런 '아나운서 전성시대'를 맞아 마냥 즐거운 이들이 TV 방송국 밖에도 있다. 늘 시청률 100%에 도전한다는 대기업 사내방송 아나운서가 그 주인공들. 국내 굴지의 기업 사내방송에서 활약 중인 아나운서 이미숙(24.(左))씨와 박은주(23)씨를 week&이 만나봤다.

글=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팬레터, 꽃다발. 우린 스타!"

미숙씨는 다음달이면 입사한 지 2년이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어려서부터 방송을 했기에 자연스레 아나운서의 길을 택했다. 초등학교 때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아침 프로그램의 보조 진행을 1년 동안 맡았다. 5월에 입사한 '새내기' 은주씨도 어려서부터 끼가 넘쳤기는 마찬가지.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로 시작하는 '아기염소'를 방송사 주최 창작동요제에서 불렀던 어린이가 바로 은주씨다. 이후 영화도 찍고, 교육방송 리포터도 하면서 방송인의 꿈을 키워 왔다.

경력이 뛰어난 만큼 이들의 첫 목표가 지상파 방송이었던 건 당연한 일. 그러나 운이 없어 쓴잔을 마신 뒤 시야를 좀 넓혔다. 그렇다고 지금 회사에 입사가 쉬웠던 것은 결코 아니다. 미숙씨는 자그마치 500 대 1, 은주씨도 무려 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서야 지금의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들게 뽑은 이들인 만큼 미숙씨와 은주씨는 회사의 '보물'이다. 이들은 매일 출근 직후 방영되는 10~15분짜리 뉴스를 진행한다. 이 뉴스의 시청률은 '지각생'만 없다면 100%. 대기업이고, 계열사 사원들까지가 대상이다 보니 시청자 수도 만만치 않다. 당연히 회사 주변이라면 어디 가든 이들은 유명 스타다.

"따로 만나고 싶다고 구내전화를 걸어오는 사원들이 가끔 있어요. 로비를 지날 땐 마치 연예인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느끼죠."(미숙씨) "사내 통신망에 소개팅 주선 쪽지가 줄을 이어요. 꽃다발을 배달시키는 분까지 있어요. 아무래도 방송사 아나운서들보다 친근하게 느끼시기 때문인가 봐요."(은주씨)

"1인4역은 기본, 쉽지만은 않아요."

'회사의 꽃'으로 대접받기는 하지만 하는 일까지 안온하진 않다. 우선 방송일. 은주씨는 뉴스 제작 과정에서 아나운서뿐 아니라 기자.작가.프로듀서 역할까지 모두 혼자 해내야 한다. 재미있는 사내 인물을 소개하는 코너 한 편을 만들려면 인터뷰 내용 구상부터 현장 취재까지 다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완성작을 스튜디오에서 소개하는 것도 은주씨. 분장사, 의상 코디네이터 역할은 빼도 벌써 1인4역이다.

각종 행사 진행이 많은 것도 사내 아나운서 업무의 특성이다. 항상 녹화로 진행되는 방송과 달리 모든 게 '생(生)'인 행사는 어려움이 많다. 마침 지난주에도 한 계열사가 주최한 노인 동요 부르기 대회의 진행을 맡았다는 미숙씨. 심사위원들의 채점 결과가 늦게 나오는 통에 식은땀을 흘렸단다. "얼마나 곤란했는지 몰라요. 침묵을 깨느라 딱딱한 행사 취지 소개를 몇 번이고 다시 해야 했죠. 이런 땐 정말 1초가 10분 같아요."

회사 안팎의 생활을 조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이들은 분명 회사에서 인기 아나운서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나운서 특유의 태도도 몸에 배어 있다. 주변의 시선도 적당히 의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밖에서까지 보이면 곤란하다. 자칫 '공주병 환자'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만한 고충 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미숙씨와 은주씨도 그걸 안다. 그래서 이들은 사내방송 아나운서가 매력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저희가 진행하는 뉴스는 전달 대상이 확실하잖아요. 이 때문에 책임감과 함께 회사의 문화를 이끈다는 자부심을 느끼죠."(미숙씨) "지방 지사에 취재차 내려가면 사인해달라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내가 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뿌듯해요."(은주씨)

뜬다, '아나 학원'

아나운서가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면서, '아나(네티즌들이 쓰는 아나운서의 줄임말) 학원'들도 지망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그동안 방송 분야의 인력 양성은 지상파 방송 3사가 운영해 온 방송 아카데미의 몫으로만 여겨져 왔다. 아나운서 배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사설 아나운서 학원들이 방송계에 졸업생들을 속속 내놓으며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현재 성업 중인 학원은 너덧 개. 이정애 아나운서 레슨, 이선미 스피치 랩, 봄온 아나운서 아카데미, 백지연 아카데미 등으로 모두 전직 아나운서가 설립한 곳이다. 이들의 오랜 실무 경험을 내세운 학원에는 당연히 '후배'가 되려는 이로 넘쳐난다. 대부분 규모가 크지 않은 곳이지만, 학원에 따라 매주 50여 명의 수강생이 새로 등록하는 곳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이런 '아나 열풍'에 대해 이정애 아나운서 레슨 원장은 "아나운서를 연예인의 한 종류로 알고 지원하는 이도 많아 다소 거품이 있다"며 "하지만 위성DMB 등의 개통으로 아나운서들의 전망이 밝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