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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선 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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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현대차 미주 법인 직원이 운전자의 건강 상태, 행동 패턴에 맞춰 작동하는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작동하고 있다.(사진 왼쪽) 스마트 워치만으로 차량 시동을 걸수 있고, 냉난방까지 조절 가능한 차량 제어 애플리케이션 ‘블루링크’. [사진 현대차]

매일 아침 5시 50분에 출근하는 직장인 이창훈(30)씨는 29일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지자 집 안에서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이씨가 스마트폰에 차량 제어 애플리케이션(앱) ‘블루링크’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시동뿐만 아니라 차량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고, 차량 내 온도 역시 원격 조절할 수 있다. 이씨는 “겨울철에 차 안에 들어가 추위에 떨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며 “차량 제어 앱이 이렇게 쓸모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차를 구입하자마자 바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카(smart car)’가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 조사 결과, 글로벌 스마트카 시장은 지난해 219조원에서 2020년 302조원 규모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첨단 정보기술(IT)로 무장한 스마트카는 2011년 4500만대에서 2016년 2억1000대로 급증할 전망이다.

 특히 텔레매틱스 기술이 날로 진화하면서 IT과 자동차의 ‘전차(電車) 결합’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텔레매틱스는 자동차 안에서 무선 인터넷에 접속해 다양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스마트카 구현을 위한 핵심 기술이다.

스마트폰과 연동한 블루투스 오디오(左), 연료 소모량을 계산해주는 ‘에코 드라이빙 서비스’(右). [사진 현대차]

 현재 도요타·폴크스바겐·아우디 등 세계 톱 자동차 메이커들은 현대·기아차와 유사한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텔레매틱스 서비스는 도난 추적, 경보 알림 등 안전 기능뿐만 아니라 소모품 관리, 고장 진단 등 차량 관리까지도 가능하게 만든다. 자동차가 스스로 아프다는 신호를 휴대폰이나 시계라는 ‘메신저’를 통해서 얘기하는 셈이다.

 스마트 워치도 스마트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다. 현대차는 이달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5’에서 차량 제어 시스템 ‘블루링크’의 스마트워치 앱을 공개했다. 스마트폰에서만 가능했던 텔레매틱스 기술을 스마트 워치까지 확장한 것이다. 블루링크 스마트워치 버전은 LG G워치, 모토X 같은 구글의 웨어러블 기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웨어’를 탑재한 스마트 시계라면 아무런 제약없이 사용할 수 있다. 운전자는 단순히 시계만으로도 시동걸기, 문 여닫기, 주차장에서 자동차 찾기 기능을 음성 인식 기술을 이용해 목소리만으로 명령내릴 수 있다. 베리 라츠라프(Barry Ratzlaff) 현대차 미국법인 이사는 “스마트 워치와 음성 인식 기술을 자동차와 연결하는 건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상상할 수 있던 일”이라며 “이제 우리는 현대차 고객에게 미래형 첨단 기능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포드, 음성으로 전화 걸고 목적지 입력

문을 원격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앱. [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향후 발표할 스마트카 선행 기술도 발표했다. 앞으로 나올 스마트워치 용 블루링크에는 운전자의 건강 상태, 행동 패턴을 기록해 정보를 제공해주는 차량용 라이프로그(개인생활 전반의 기록을 정리·보관해주는 서비스) 기능이 있으며 주행중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기능도 있다. 구글과 협력해 차세대 텔레매틱스 서비스에 구글맵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할 계획도 세웠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BMW도 삼성 스마트워치 ‘기어S’로 차량을 원하는 장소에 옮겨놓는 무인 자동주차 기술을 공개했다. ‘원격 발렛 파킹 어시스턴트(Remote Valet Parking Assistant)’로 불리는 이 기술은 운전자가 건물 앞에 차를 대고 하차해서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로 주차 명령을 내리면 자동차가 스스로 주차장까지 이동해서 주차하는 시스템이다. BMW는 지난해에도 삼성전자와 함께 갤럭시 기어로 전기차 ‘i3’ 배터리 현황, 충전 시간을 원격 조작하는 기능을 시연했다. 독일 아우디도 CES에서 G워치를 이용해 자동차를 불러오는 무인차 기술을 선보였다. 아우디는 한발 더 나아가 자동주행 기술을 갖춘 A7 모델을 실제 도로에 투입해 스탠퍼드대학교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서 CES 전시회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까지 900㎞를 운전자 조작 없이 달리게 했다.

 미국 카메이커 포드도 스마트카 분야에선 선구적인 위치에 있다. 포드는 CES에서 공개한 음성작동 기술 ‘싱크3’를 올해 출시되는 차량에 탑재한다. 싱크3는 운전자가 이름을 말하면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주고 음성으로 목적지를 입력할 수 있으며, 운전자에게 온 문자 메시지를 음성으로 바꿔 읽어주기도 한다. 운전자가 스마트폰이나 차량 디스플레이에 집중하지 않아도 돼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독일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은 운전자가 손짓으로 차량 내 오디오, 비디오 등을 제어하는 ‘제스처 컨트롤’ 기능을 일부 차량에 적용할 예정이다. 제스처 컨트롤은 차량 내부에 장착된 센서가 운전자의 손 움직임을 인식해 기기를 작동하는 방식이다. BMW의 텔레매틱스 서비스 ‘커넥티드 드라이브’는 사고로 에어백이 터지거나, 운전자가 SOS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BMW 콜센터에 연결된다. 콜센터는 상담원이 운전자와 통화하는 동안 위성항법장치(GPS)로 차량 위치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실시한다. 교통 사고로 운전자가 정신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콜센터는 전화를 끊을 때까지 연결 상태를 유지한다.

인포테인먼트로 전화·문자·음악듣기 가능

뉴스·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텔레매틱스 시스템(左), 차량 앞 유리에 운전정보를 나타내주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右). [사진 현대차]

 스마트카 혁명은 차량용 오디오 분야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대차는 올 하반기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차량 내 CD 플레이어를 없애기로 했다. 대신 미국 시장에 출시하는 2016년형 신차부터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한 7인치 디스플레이 크기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장착하기로 했다. CD의 퇴조는 1930년대 무선라디오로 시작된 카오디오가 테이프, CD 시대를 거쳐 지금은 음원 스트리밍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 조치다.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 전화통화, 문자 송수신, 지도 검색, 음악 듣기뿐만 아니라 음성인식 서비스까지 운전 중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애플과 구글 소프트웨어를 다같이 지원하는 플랫폼을 개발한 건 현대가 처음이다. 또 차량에 음원·영상·사진 등을 업로드 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멜론’, ‘엠넷’ 등 음원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에 음악을 저장할 필요도 없이 차에서 바로 스트리밍 감상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 등 미국 완성차 메이커도 내수용 차량에 속속 CD플레이어를 빼고 있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사라진 속도와 비교하면 CD의 퇴조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편이다. 미국에서도 2011년이 되서야 ‘렉서스 SC 430’을 끝으로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는 차종이 완전히 사라졌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스피커의 음질 향상에 따라 원음을 재현할 수도 있게 되면서 음원 시장 경쟁이 스마트폰이나 PC에만 머무르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삼성과 LG 등 국내 IT 기업들은 아직 스마트카 분야에서 갈 길이 멀다. 같은 대한민국 국적인 현대차가 애플과 구글을 선택할 정도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 IT업체들이 추격전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이 분야를 선점한 애플·구글 같은 미국 업체들이 앞서는 게 현실”이라며 “텔레매틱스 시스템 등 고도의 SW 개발 능력이 필요한 분야에선 아직 미국 업체들에 비해서는 기술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은 전사적으로 차량용 반도체와 전장(電裝) 부품 등 스마트카 분야 사업을 육성하고 있지만 아직 실적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자동차용 앱인 ‘드라이브 링크(Drive Link)’는 인도 타타자동차 정도만 사용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10년 현대차와 ‘차량용 전자부품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스마트카 전자부품 개발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듬해 프로젝트가 폐지되면서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LG는 삼성에 비해선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LG전자는 2013년 7월 차량용 첨단 제품을 전담할 VC(차량용 부품) 사업본부를 신설해 전장 부품과 스마트카 부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도 올해 CES에서 디터 제체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면담하기도 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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