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새지구<26>2세…긴장의 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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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 2세 경영인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H중공업사장 J씨. 올해나이 32세. 미국에서 경영학석사학위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지금의 사장자리에 오른지 1년2개월째다. 2만6천명을 거느리는 총수가 된것이다.
하루 일과는 매일 상오6시30분에 예외없이 열리는 부서장회의로부터 시작된다. 11년째 전통이다. 회의는 1백60여명의 부서장이 7개 사업본부별로 테이블에 나눠 앉아 아침식사를 겸해서 그날일과를 짜는 것이다.
J사장은 중요 이슈가 있는 테이블로 옮겨다니며 회의를 주재한다. 주로 듣는 입장을 취하고 웬만한 결재서류는 즉석에서 처리한다. 1시간정도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새벽부터 회의>
본부장급 회의가 자리를 옮겨 사장실에서 30분간 더 계속된다. 정책회의인 셈이다.
회의하는것 자체부터가 거북하고 이상하더니 이젠 어느 정도 몸에 배었고 요령도 차츰 익힌 편이다.
『처신하는데 걸리는 것이 어디 한 두가지겠읍니까.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고 일에 대해 전문지식도 없고, 거기다가 재벌2세라고하여 흔히들 색안경을 쓰고 보는 따가운 시선도 느껴지고…
그러나 여기에 신경을 쓰느니 차라리 일에 열중하는 것이 훨씬 마음도 편하고 좋은 것같아요.
또 신경을 많이 쓰고 덜 쓰고 한다해서 어떻게 될일이 아니잖습니까. 공연히 피곤할 따름이지요』
때로는 부하직원과의 만남이 그에게는 사실 「한판 싸움」일수도있다. 자칫 헛점을 보이면 사장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을테고 나아가서 그런 소문이 퍼져나간다면…. 노회한 고참 중역들의 페이스에 이리저리 끌려다닌다는 생각이 들면 공연히 한번 심술을 부려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
『마음먹기달린것같아요. 아무리 사장이라도 모르는 것은 무조건 물어보고 배워야지요. 사장이 배우자는데 안 가르쳐줄 직원이 어디 있겠읍니까. 내가 독자적으로 내리는 결정은 거의 없어요. 모두가 각부문의 전문가인 중역들선에서 결정되고 그것이 그대로 실행에 옮겨집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오9시가 지나면서부터 사장으로서의 일상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외빈을 만나는 의전적인 일과 틈나는대로 현장을 들러보는 일이 중심이 된다.
사실 손님을 만나는 일이 그에게는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사업관계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이 산업시찰및 견학삼아 찾아오는데다가 그들중에 상당수가 「젊은 사장」인 자신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갖가지 질문을 던져온다.
겸손이 가장 효과적인 대처방안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점에 관한한 부친으로부터도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고 아래 직원들한테도 엄명을 내려놓고 있다.

<틈나면 현장에>
누가 찾아오든지간에 꼭 출입문밖에까지 나가 적접 배웅한다.
손님들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단다. 이 시간엔 주로 현장에 나간다. 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것은 모든 간부사원들에게 적용되는 수칙이다.
현장확인주의는 아버지 스타일과똑같다. 해외수주활동이나 구체적인 계약등은 중역들에게 모두 맡기고 자신은 전체적인 분위기조성과 교통정리에 충실하려고 한다.
1주일에 최소한 한번씩은 서울에 올라가 이틀정도를 보낸다.
관청일과 꼭 서울에서 만나지 않을수 없는 사람들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두번을 왔다갔다 했다.
회장감투를 쓰고있는 체육단체○○협회 총회가 열리는 바람에 한번 걸음을 더해야 했다. 서울에서 머물때는 아버지집에서 잔다.
서울에서 1시간밖에 안 걸리는 자가용비행기 덕분에 그래도 피로를 많이 더는 셈이다.
값비싼 비행기에는 보험을 들었어도 자신은 보험이라고는 든것이 없다. 그런 것에 신경쓰기싫다는 것이다.
종업원들의 일과 종료신호는 그에게는 또다른 일과시작을 알려주는 것이다.

<주2회 서울행>
술안마시는 날이 1주일에 며칠이냐는 질문에 『글쎄요』하며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
고상한 디너 쇼로부터 시작해서 마이크를 잡고 한 곡조 흥겹게 불러젖혀야하는 기생파티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우에도 접대하는 상대방보다 먼저 취해서도 안된다. 누구에게나 긴장을 푸는것이 술자리지만 그로서는 더 긴장되는자리다. 여전히 그에게는 「일과중」인 까닭이다.
주량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안한다. 차라리 그것(술)으로 승부를 걸어오는 경우라면 간단히 해치울(?)수 있다.
새벽 몇시까지 술 상대를 하든 다음날 상오 6시30분 부서장회의에는 어김없이 나가야 한다. 아버지와의 승부이기도하다. 아버지는 한번도 그런 핑계로 새벽회의를 거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2세라는것은 긴장의 연속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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