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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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범석외무장관이 최근 개진한 정도외교론이 여러모로 관심을 끌고있다.
『우리 외교는 과거 목전의 이익때문에 저자세 외교를 편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그의 지적처럼 우리정부는 사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널리 확립된 관행에서 벗어난 외교를 해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사정의 배경에는 말할것도 없이 남북분단상황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유엔에서 「한국문제」에 대한 표대결이 가열했던 70년대 중반까지는 물론 현재도 남북한은 제3세계를 상대로한 치열한 외교전을 벌여 피차 국력에 상응하지 않은 외교적 소모전을 계속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이용한 일부 제3세계국가들이 남북한을 저울질하며 이득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우리 정부는 울며 겨자먹기로 그들의 요구에 끌려갔던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만도 레조토가 북한카드를 내밀면서 우리가 들어주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제 앞으로는 이같은 저자세 외교를 탈피, 남북 분단상황을 이용하려는 국가에 대해 단호하게 정도를 밟아나가는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책전환은 당장은 손해도 보고 반발도 있겠지만 더이상 분단상황을 악용하는 국가들에 질질 끌려다닐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와 주체성의 회복으로 평가된다.
이같은 정책은 제3세계에만 해당되는것이 아니고 중공및 소련등 동구권에도 적용돼 과거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주장해야할 권리를 방치했던 전철을 배격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해 분명 진일보라 할수 있다.
최근 중공이 유엔전문기구와 공동주관하는 자국내 국제행사에 우리 대표의 참가를 거부한데 대해 강력한 항의를 해 국제기구의 지지를 받은 것은 정도외교의 좋은예다.
국가간의 교섭활동인 외교는 고도의 정확한 정세분석, 냉철한 분별력, 합리적 사고 및 기민하면서도 강인한 대응태세가 종합적으로 요구되는데 오늘날 우리외교가 이같은 사항을 고루다 갖추었다고는 보기어렵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교섭사항에 질질 끌려다닌 사례도 산견됐고 저자세로 교섭사안을 종결짓는데만 급급했던 일도 있다.
외교의 정도를 방해 또는 저해하는 또다른 요인은 장기적 국가목표에 대한 비전의 결여, 대외창구에 대한 권력기관의 개입, 정권안보적차원에서의 외교과정및 결과에대한 비판억제등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분단상황이라는 특수한 여건을 빌미로 우리외교는 과잉보호를 받아 건전한 비판을 통한 자기갱신력이 부족했던것도 사실이다. 이점 깊은 성찰이 있어야겠다.

<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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