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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3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산가족재회라는, 민족적 비극의 서사시같은 드라머를 보면서 휴전협정조인 30주년을 맞는 감회는 착잡하기만 하다. 53년7월27일 오전10시, 한반도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무장행동의 완전 정지를 보장한다는 기본정신으로 꾸며진 휴전협정에 유엔군과 공산측 대표들이 서명을 함으로써 전면전의 총성은 3년만에 일단 멎었다.
휴전협정은 우리들의 열화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결되었다. 그때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기는 했어도 북한의 도발로 일어난 한국동란은 분단된 국토통일의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우리는 직감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기회에 통일을 하자』는 우리의 염원은 미국의 국내정치, 그리고 한반도에서 중공세가 강화되는 것을 견제해야하는 소련의 전략적인 동기앞에는 무력한 것이었다.
오늘의 시점에서 지난 3O년을 돌이켜보면 휴전협정의 기본정신을 이루는 한반도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은 전망조차 서지않은채 북한측은 휴전협정을 위반하기 위해 있는것처럼 협정위반을 일삼고 있다.
북한은 30년동안에 모두 7만6천2백74번이나 휴전협정을 위반하면서 적화통일이라는 기본전략을 굽히기는 커녕 오히려 강화하고 있는게 오늘의 실정이다.
휴전당시 40만명이던 북한의 병력은 60만내지 70만명 (40개사단)으로 늘고, 휴전선북방의 북괴군은 공격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탱크, 장거리포 같은 장비에서는 우리를 2대1로 압도한다.
그동안 바깥세계는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데탕트의 실험기를 맞아 미소관계, 동서관계는 명암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평화공존체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동란에서 총부리를 맞대고 싸운 미국과 중공까지도 국교를 정상화하고 교류와 협력을 넓혀가고있다. 그리고 한국동란의 「동지」였던 소련과 중공은 이념적인 「적」으로 바뀌어 있다. 세상은 이렇게 많히 달라졌다.
이런 대세를 홀로 외면하고 독재체제와 폐쇄성을 강화하고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하면서 끊임없이 적화통일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것이 북한이다.
휴전협정은 이제 사문서나 다름없다. 이땅에 평화가 있다면 그것은 무장평화일 따름이오,그나마 휴전과 함께 체결된 한미방위조약이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장기화되는 분단과, 그 분단의 완벽성때문에 남북한의 두사회는 동질성을 잃고 이질성만 확대되어 가는것이 무엇보다 가슴아픈 일이다.
최근 잇달아 자유를 찾아 귀순하는 북한사람들의 말을 인용할것도 없이 북한사회는 거대한 요새요 병영으로 변해 버렸다. 북한주민들은 하루 6백g의 배급된 식량과 12시간의 중노동에 굶주리고 시달리고 있다.
반면에 남쪽의 우리는 휴전당시 50달러 전후이던 개인당 국민소득이 이제는 1천7백달러가 되고 전쟁의 폐허에 일으킨 경제는 한국을 「선진도상국」의 대열에 올려놓고 있다.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나 남북한을 비교해서 보나 북한의 낙후성은 점점 커지고있다. 그런 현실에 우리는 쾌감이나 우월감보다는 아픔을 느낀다.
지난 30년동안 북한은 땅굴을 파고, 파괴분자를 침투시키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중상하고, 한미간의 이간을 시도했다. 그러나 어느것 하나 성공한것이 없다.
사문화되어 버린 휴전협정이 체결된 날을 맞아 우리는 한국동란의 전훈을 되새기고, 긴장속의 무장평화가 진정한 평화로 바뀌는 조건을 생각해본다.
두말할것도 없이 그것은 남북대화다. 그러나 대화는 힘의 입장에서만 가능하다. 군사적인 힘, 경제적인 힘, 우리체제의 우수성에서 나오는 힘을 유지하는한 북한도 언젠가는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동란은 우리쪽의 완전 무방비상태에서 일어났다는 교훈은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려는 우리의 대북정책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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