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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자율화와 사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날씨 탓인지 깜박 낮잠에 젖어 있는 나를 깨우는, 외출준비에 바쁜 고모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귀를 기울이니 오늘은 신발때문에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고1인 작은 고모는 W란 운동화를 사고 고3인 큰고모는 샌들을 샀는데 오늘은 운동화 좀 신자고하니까 신발주인은 안된다고 막무가내다.
교목자율화이후 아침·저녁 신발과 옷때문에 다투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옆에 계시던 어머님께서도 방법이 없으신지 몇마디 참견하시다 그냥 나가버리신다.
나도 못본체 못들은체 저녁준비를 하면서 언젠가 『언니는 우리와 달라요. 그게 세대차거든요』하던 말을 기억해 본다.
신발 하나도 꼭 그렇게 유명 메이커와 비싼 것, 남들이 다 신는 꼭 그런 것만신어야 이 시대에 맞게 사는것일까?
하긴 4살짜리 우리녀석도 나이키를 사달라고 졸라대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여학교시절을 나는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보냈다.
그때는 세일러복을 입었는데 하복을 입을때엔 흰운동화 동복때엔검은색 운동화로 통일돼있었다.
겨울이면 더러워질 때까지 거의 1주일은 신었지만 여름이면 신발때문에 아주 고민이었다.
행여 밟히거나 때가묻을까봐 얼마나 신경을썼는지 모른다.
깨끗이 빤다음 날이면 할머니가 쓰시던 가루치약을 몰래 물래 바르고 급할 때는 분필로 문지르면서 공연히남학생들 눈까지 신경을 쓰곤 했었다.
그런 일들이 지금 흐뭇한 미소로 마무리 지을수 있는 것은 내게 있어선 아름다왔고 풍요로왔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리라.
세속에 눈멀고 곁눈질하는것보다 나는 언제나 작고 부드럽게, 그리고 속에는 예쁜 마음의 꽃밭을 가꾸면서 살아가고자 했다.
이 여름 뜨거운 태양도, 지겨운 장마비도 다 이기며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주는 귀여운 우리 꼬마녀석에겐 나이키를 신어야 하는 사치보다는 깨끗하고 검소함을, 그리고 작은 물건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는마음을 가르치고 길러 주는 엄마가 되리라고 다짐해본다.<서울성북구보문동4가1의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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