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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게] 17일 창립 3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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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름다운 가게 3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은 그간의 가게의 성과를 조촐하게 자축했다. 왼쪽부터 유재성 한국MS 대표, 윤팔병·손숙가게 공동대표, 홍명희 가게 부이사장, 박원순 상임이사, 임태형 KT사회공헌팀 부장. 변선구 기자

'나눔과 순환'의 철학을 바탕으로 헌 물건을 기증받아 재활용하는 사업을 펼쳐온 '아름다운 가게'(공동대표 박성준.손숙.윤팔병)가 17일 창립 3주년을 맞았다. 아름다운 가게는 기부 문화에 새 바람을 몰고온 것은 물론 시민운동의 새로운 모델로도 꼽힌다.

17일 오후 서울 안국동 윤보선 고택에서는 가게 3주년을 축하하는 조촐한 기념식이 열렸다. 가게의 박원순 상임이사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가게가 이만큼 성장해 감개무량하다"며 지난 3년간 물심양면으로 가게를 도와준 60명의 이름과 기증 내용을 일일이 소개했다. 박성준 대표는 "가게라는 한 그루 나무가 30년 후 어떤 나무일지 궁금한데, 잘 생긴 청년 나무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장학재단인 은성문화재단의 이복자 이사장은 새 점포 마련을 위해 1억50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고, 유재성 한국MS 대표는 "가게 100호점이나 101호점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 가게 성장과 나눔의 확산=3년간 아름다운 가게를 거쳐 새 임자를 찾은 헌 물건은 760만점. 7만5000여 명이 기증한 물품이 전국 21개 도시 총 50개 매장과 각종 나눔 장터에서 새 주인을 찾았다. 가게는 차량에 기증품을 싣고 판매에 나서는 '움직이는 가게', 유명인사와 연예인의 기증품을 경매해 파는 인터넷 쇼핑몰 '생생몰' 등을 열어 재활용과 나눔의 문화를 확산했다.

가게 측은 재활용품 판매로 얻은 수익금 8억5000여만원을 1200명의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정기적인 수익금 전달 외에 올 초 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 8월 전북지역 수해 등을 돕기 위해 지원금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자선단체가 되려면 매출 대비 자선금 배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가게 내외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어 앞으로의 과제로 꼽힌다.

◆ 나눔 장터와 아름다운 토요일=서울시와 함께 뚝섬 유원지에서 운영하는 '아름다운 나눔장터'에는 120만명 가까운 시민들이 다녀갔다. 서울시 정태옥 환경과장은 "뚝섬 나눔 장터를 열 때마다 수만 명이 온다"며 "서울의 새로운 명소이자 자원 재활용의 산 체험장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토요일'은 단체참여형 나눔장터 행사로 기업들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 행사에 참여한 기업과 기관만 170여 곳이 넘는다. 가게는 올 7월부터 일반인도 소그룹으로 참가할 수 있는 '일일가게'를 서초점에서 운영하고 있다.

◆ 위 스타트와 연계=아름다운 가게는 'We Start(위 스타트)'운동에도 날개를 달았다. 위 스타트 운동은 저소득층 어린이에게 복지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주려는 운동이다. 올 3월 가게 측은 성남시 분당 이매동에 매장을 연 뒤 이곳 수익금을 성남 위 스타트 마을 어린이들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

중앙일보 창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북측 광장에서 ' 위.아.자 나눔장터'가 가게 측의 협조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위.아.자는 위 스타트.아름다운 가게.자원봉사 등 세 가지 사회공헌운동의 앞글자를 따 만든 것이다. 이날 장터에서 올린 수익금 5600여만원은 전액 위 스타트 운동에 기부됐다.

◆ 아름다운 아파트=가게 측에 재활용품을 대거 기증하는 '아름다운 아파트'도 열아홉 곳으로 늘어났다. 열다섯 번째 '아름다운 아파트'로 선정된 이매동 동신 9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분당 이매점에 헌 물건을 기증하며 '위 스타트'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신준봉.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박원순 상임이사 "기부문화 꽃 피울 한알의 씨앗을 뿌려"

가게 3주년을 맞아 가장 감회가 새로운 사람이 그동안 사업을 이끌어온 박원순 상임이사(사진)다. 지금까지 가게 사업에 대한 자평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3년간 가게가 급성장했다. 비결이 있다면.

"총선 낙선운동에 이어 어떻게 하는 일마다 잘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가게의 간사.임원들과 자원활동가들, 언론 등이 도와준 결과다. 먼지 날리는 가게에서 다리가 붓도록 몇 시간이고 서서 물건을 팔던 자원활동가 한 분 한 분이 모여 수백 명, 수천 명이 됐기에 가능했다. 간사들은 내가 월급을 올리자고 해도 가게 재정에 영향을 준다며 마다했다. 중앙일보가 3년간 관심을 가져준 것도 언론의 캠페인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요즘 시대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10~20년 전에 비해 사람들이 외형적 가치보다 내면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헌 물건이라도 싸고 좋다면 얼마든지 구입하는 쪽으로 바뀐 것 같다. 이런 면에서 가게는 사람들의 의식.가치관.철학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

-초창기 목표가 있었을 텐데.

"애초 계획은 230여 개 시.군.구마다 하나씩 가게를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50개니까 20~30% 정도 이뤘다. 중요한 것은 외형적 성과보다 '나눔과 순환'이 생활 속의 습관과 가치가 되느냐다. 한국사회의 척박한 기부문화가 본질적으로 변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가게가 하나의 씨앗은 뿌렸다고 생각한다. 운동의 취지를 이해하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특별한 의식 없이도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가게에 들르면서 기증품을 챙겨오는 분들이 요즘은 많다. 고무적인 일이다."

-가게 운영 면에서 현재 가장 아쉬운 점은.

"가게가 일종의 고물상인데, 기증받은 물건을 쌓아둘 공터(물류센터)가 부족하다. 덩치 큰 가구와 가전제품을 취급하는 일이 시급한데 공간 부족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 교외에 널린 게 땅이다. 뜻있는 분이 몇천 평 내주신다면 버려지는 그 많은 가구.가전을 재활용할 수 있다."

-앞으로 가게 운영 방향은.

"그동안 큰 얼개는 짰다고 본다. 예전에는 가게 하나 내려면 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었지만 지금은 쉬워졌다. 이제는 이벤트를 열어 물건을 수거하는 방식이 아닌, 일상적으로 소리없이 재활용품을 모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대규모 장터도 자주 열어야 한다. 예로 광화문에서 용산 한강다리까지 매주말 교통을 통제하고 장터를 연다면 그 자체가 서울의 축제이자 명물이 되지 않을까?"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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