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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盧불신' 씻고 北核 이견 봉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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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2001년 3월 김대중(金大中).부시 회담의 실패를 기억하면서 노무현.부시 회담을 지켜봤다.

미국 사람들의 눈에는 盧대통령이 2030세대의 반미 정서 물결을 타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다. 그는 미군 철수론을 방관하며 햇볕정책의 계승을 공약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민족주의자로 비쳤다.

그래서 盧.부시 회담 성패의 기준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부시와 개인적인 우정.신뢰를 쌓아 한국이라는 주요한 동맹국의 믿을 만한 지도자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납하지 않는 미국의 입장과, 전쟁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는 군사적인 조치에 반대하는 한국의 입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였다.

盧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부시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국내 지지자들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미국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한 결과다. 그런 노력의 결과 두 대통령 사이에는 신뢰와 우정의 화학작용이 일어났다.

부시 대통령은 盧대통령을 이야기하기 편한 상대라고 소개하고, "앞으로 우리가 중요한 문제를 개인적 우정을 갖고 해결한다는 데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북핵 문제에서는 한국이 크게 양보를 했다. 부시 대통령이 평화적 해결의 원칙을 확인한 데 대해 盧대통령은 두가지를 내줬다.

하나는 만약 북한이 핵 위협의 수준을 높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확대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민간인의 희생없이 핵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말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군사적인 조치를 의미한다.

盧대통령이 귀국 후 국민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야 할 대목이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도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조치의 옵션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다른 하나의 양보는 한국이 앞으로 남북관계를 북핵 문제의 사정에 맞춘다는 약속이다.

이것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수억달러의 뇌물 힘으로 추진된 것이 확인돼 그 도덕적 기반이 무너진 현실에서 어차피 남북관계가 이대로는 안될 지경에 와 있다.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에서는 한국이 재배치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미국은 제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치.경제.안보 사정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추진한다고 약속했다.

두나라 관계와 북핵 사정에 따라 완급 조정의 여지를 남겼다. 갈등의 소지도 될 수 있다.

걱정과 희망을 갖고 미국에 와서 걱정은 벗고 희망만 갖고 귀국한다는 盧대통령의 말에 일단 동의한다. 그러나 북한의 반발과 젊은 지지층의 불만이 그를 기다린다.

실용주의자의 면모를 처음으로 과시한 盧대통령에게 수억달러의 뇌물을 안 쓰고도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할 협상 수완과 한.미관계의 포괄적 발전을 그의 지지층에 세일하는 리더십이 있는지 두고볼 일이다. 盧대통령도 마음만 먹으면 돌출 발언을 안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이번 방미의 수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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