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 '말 바뀐 지휘권'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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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의원들은 천 장관이 1996년 10월 상임위에서 검찰청법의 수사 지휘권 조항 폐지를 주장했던 사실 등을 집중 추궁했다. 주호영 의원은 "장관은 수 차례 법사위 발언 등을 통해 (수사 지휘권을 규정한) 검찰청법 8조가 폐지돼야 할 법률이라고 주장했다"며 "지금은 생각이 바뀐 것이냐"고 물었다.

천 장관은 "예전과 표면적으로 다른 것은 인정한다"며 "그때는 신념을 가지고 구체적 사건 지휘권을 폐지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바뀌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당시는 검찰이 12.12 사건과 5.18 사건을 기소유예와 공소권 없음 처리를 했다가 세월이 바뀌자 재수사에 착수해 여러 사람을 구속기소했다"며 "검찰이 독재권력의 하수인이 돼온 역사를 청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장윤석 의원은 "천 장관이 아무리 인권을 부르짖어도 4000만 국민이 다 안다. 이번 지휘권 발동은 강정구 교수를 비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김재경 의원은 "건국 이래 최초의 지휘권 발동이 왜 하필 강정구 교수 건이냐"고 따졌다.

천 장관은 "이 사건은 강정구라는 한 국민의 사건이 아니고 국민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불구속 수사 원칙의 문제"라며 "공안 사건일수록 이념 대립의 압력이 있고 구속이 남발될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장관인 제가 불구속 지휘를 한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압력이 저와 제 주위에 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은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지휘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에 천 장관은 "저 자신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살아있는 실정법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면서 "이 건과 국가보안법 폐지는 무관하다"고 잘랐다. 그러면서 "만일 이 사건이 보안법으로 기소된다면 법관이 실정법 질서에 따라 판단하게 될 것이며, 이 점을 검찰총장과의 협의 과정에서도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고 덧붙였다. 또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이 "지휘권 발동 과정에 정권 차원의 사전 기획설 또는 청와대와 사전 조율했다는 의혹을 일부에서 제기한다. 사실인가"라고 묻자 천 장관은 "전혀 없었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다만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의 상관이고, 장관은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자리라 지휘권 행사 직후 보고는 했다"면서 "지휘권 행사 1주일 전부터 검찰총장과 직접 상의해 왔으며 느닷없이 내린 결정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조치가 검찰의 독립성을 해쳤다는 야당 의원들의 비판에는 "검찰은 준사법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이 소중한 가치인 동시에 국민에 의해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응수했다.

천 장관은 이번 사건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검찰총장에게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면서 "수사 지휘권이 남용되면 검찰의 독립과 중립에 심각한 침해가 될 수 있다. 수사 지휘권 행사가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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