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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폭력·아내의 고발」…그 원인과 대책 대담|"부부도 남"…상대알려고 애써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최근 남편을 경찰에 고발한 아내들이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13일 과도한 교회헌금을 메우기위해 밤늦도록 영업을하다 귀가한 약사아내를 구타한 남편이 아내에 의해 경찰에 고발되었다.
연이어 별거아내를 구타한 남편, 습관적으로 아내와 자녀들에게 매질을하던 무직남편등 이 아내의 고발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남편을 고발하는 아내, 아내를 고발사태로까지 몰고간 남편의 폭력, 그 원인과 현상, 대책등을 변호사출신의 황산성의원과 작가 최인호씨의 대담으로 엮었다.
황=요즈음 아내가 감히 남편을 경찰에 고발하다니하는 생각에서 그원인이 된 남편의 폭행이 사회적 이슈가된것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정·법원에 있어봐서 알지만, 남편의 폭력행사가 의외로 많습니다.
단지 남편폭력상담을 주로 취급하는 『여성의전화』가 남편폭력을 표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을뿐이지요.
최=및년전엔가 일본 수상(사또·에이사꾸) 부인이 젊은시절 남편에게 매를 맞았다고 신문기자에게 털어놓아 세계적 화제가 되었던적이 있지요?
동양에서는 꽤 있었나보지요.
폭력은 야만적이지만 살다보면 부부간에는 있을수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부부싸움의 손찌검을 빌미로 경찰에 고발한다는건 있을수없는 문젭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처사지요.
황=부부싸움은 당사자들의 문제라고해서 가족도 이웃도 말릴 생각을 안해요.
남편이 심하게 매질을해서 기절한 여성도 적지않은데 주변반응은 냉담합니다.
요즈음 문제되고있는 경우들도 모처럼의 남편 손찌검에 고발을 한것은 아닐겁니다.
오랜세월 시달려오다가 어느순간 격분하여 고발한것이지요.

<일 수상부인도 맞아>
최=오랫동안 곪아온것이 터진거지요.
고발도 유행인가. 그런면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여자들 매조키스틱한데도 있는것같아요.
학생시절 이웃에 세든 부부를 봤는데 남편이 때리면 도망을 가면될텐데 아내는 죽여라, 죽여라, 악다구니를 해대며 달려들어요.
인종도 아닐테고….
황=오랜시절 남편에게 맞아온 부인들은 노이로제기가 생기더군요.
머리가 멍해지고 온몸이 늘 쑤시고 아픈증상이 나타나요.
골프채, 테니스채로도 맞아요.
오래 견디고 살다가 자식도 커지고 나이 40이넘어 이제는 남편이 무서워 더이상은 못살겠다고 이혼을 결심하는 부인들도 있읍니다.
최=「솔·벨로」의 『시저스 데이』, 「존·업다이크」의 『토끼』들이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아내의 폭력으로부터 도망하려는 남편들의 문제도 적지않아요.
아내의 고발을 듣고보니 슬슬 우리나라도 이런쪽으로 가고있는것이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제 군대친구 하나는 히스테리컬한 아내의 등쌀에 못이겨 이혼을 한경우도 있어요.
아내와 남편학대 뿐아니라 유아학대도 점차 문제화할 것 같아요.
황=자식이나 아내 모두 내가 벌어먹여 살려야하는짐이라는 생각에서 무섭게 인색하게 구는 남편들이 적지않지요.
남자들의 열등의식이 가장 큰문제인것같습니다.
최=오늘날의 한국의 가정교육은 성숙한 인간을 만들지 못하는 것같아요.
모두들 미숙한 인간들이니까 자신이 책임지고 희생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면서 상대에게는 너무 많은것을 요구하다보니 가정불화의 원인이됩니다.
저만해도 아내에게 따뜻한 어머니, 사랑스런 애인, 요염한 창부 그 모두를 요구하거든요.
특히 어머니들이 아들을 키울때, 모든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니까 커서 문제가 많지요.
어머니같은 아내란없지요.
황=작년에 미국에 갔을때 보고 느낀것인데. 그곳에서도 남편의 폭력이 상당히 문제인것같더군요.
작년에 매맞은 아내가 2백만명이라고해요.
그곳에서는 부부싸움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면 경찰을 불러요.

<베풀지않고 요구만>
그리고 『자매의 집 (Sister'S house)』 『피난처(Shelter)』등으로 불리는 사회단체가 있어서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아내의 보호소역할을 합니다.
집을 나와도 갈곳이 없고 또 부부관계가 돌이킬 가망이없는 경우에는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까지 시키는곳도 있어요.
각 여성단체가 『매맞고 살지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일단 문제가 생겼을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할것인가를 법률적측면, 사회보장적인 측면등에서 다룬 다큐멘터리필름·영화·책자를 준비해두고 있더군요.
언제든 필요하면 도움을 정할수있지요.
우리도 그런 범사화적 도움이 절실합니다.
최=남편의 폭력이다, 아내의 고발이다 그 모든 오늘날의 한국가정이 당면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들의 뿌리는 결국 오늘의 가정이 예전처럼 부부와 가족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하고 있지않다는데 있는 것같습니다.
오늘날 부부간의 대화를 강조하는데 우리아버지 시대만해도 거의 대화없이도 행복했거든요.
행복의 척도가 지나치게 물질적 즉물적인것으로 치닫다보니 정신은 황폐해지고 남편과 아내는 각자 고독해질수밖에 없지요.
가족구조만해도 그래요.
벌써 도시에는 거의 형태는 핵가족이지만 그에따른 정신구조, 즉 부부간의 사람이 식었다면 헤어진다는 서구적 의식은 갖고있지 못하거든요.
그러니 갈등의 연속이지요.
이왕 헤어질수밖에 없다면 깨끗이 물러나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원한이 쌓이고
황=외국처럼 이혼을해도 직장을 가질수있고 재혼할 기회도있는 사회가 아니니까 여성 스스로도 불행한 결혼에 매달리고, 남성들도 그 약점을 이용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극한과 극악의 경우가 되어야만 비로소 자신을 압니다.
남편과 아내도 원수처럼 되고나서야 비로소 헤어집니다.
헤어지기까지는 폭언·매질·인격적인 모독을 수없이 반복하니까 증오만 쌓이지요.
웃으면서 헤어지지는 못하는것 같습니다.
최=부부관계도 사실은 하나의 역학관계예요.
헤어지면 부부는 남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상대방의 심리를 읽을수 있어야 해요.
외로와할때 다독거려주고, 답답해할때 풀어주는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서구화의 역기능으로 모든 인간관계가 황폐해가는 이시대에 우리들이 지켜야할 우상, 가장 마지막 구원은 가정입니다.
사실상 남자들이 사회에 나가서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피흘리며 기진맥진해 집에 돌아오는가를 아내들이 안다면 정말 통곡을 할것이라는 얘기가 있지요.

<헤어질 결단 못내려>
타인에 대한 사랑, 그것도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해진때인것같습니다.
아니면 우리도 미국처럼 어느날 흔적도없이 사라져버리는 남편, 이른바 『남편의 증발』 현상이 나타나지않을까 싶습니다.
황=물론입니다.
그러나 정말 이해할수없이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이상한 남자들이 이사회에는 너무 많다는게 문제지요.
사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들을 보면 대부분 생활고·현실의 불만·실업·정신적실의·알콜중독등에 시달리고 있는 남성들입니다.
그 스스로에 문제의 소지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지요.
최=남성들은 자꾸 왜소해지는데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고등교육, 매스컴의 발달등으로 아는것이 많아지니까 점점 요구가 많아집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한국가정에서 부권, 부권은 이미 사라진것 같아요.
아내들은 즉물적인 가치척도로 남편을 타인과 비교하여 가뜩이나 상처받고 만신창이가된 남편들의 자존심을 짓밟지 말아주었으면 합니다.
정신적인 지주가 없으니까 여성들이 자꾸 겉돌고 공허해하고하는데 그것이 자신과 남편 나아가 가족 모두에게 돌이킬수없는 파탄을 부릅니다.
내면의 충족을 위한 수련, 사랑의 회복, 그것이 우리모두에게 필요한 시대인것같습니다.

<박금옥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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