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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묻고 송달호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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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성룡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소설가 복거일씨(왼쪽)가 철도전문가 송달호 박사를 만나 우리나라 철도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송 박사는 유라시아 철도,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해 얘기할 때는 목소리가 커졌다. [김성룡 기자]

철도는 현대 수송 수단의 효시였다. 자동차와 항공기의 빠른 발달로 중요성이 줄어들었으나 중거리 수송에선 여전히 경쟁력이 높다. 근년에 철도는 기술 혁신으로 경쟁력이 더욱 높아졌다. 고속철이 우리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마침 며칠 전 정부가 북한에 철도망 복원을 제안했다. 유라시아 횡단 철도에 대한 논의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진지하게 검토되어 왔다. 철도 전문가 송달호 박사에게 철도의 현황과 전망을 들어본다.

"우리 철도와 중국 횡단철도 연결 논의할 필요 있다"

-우리 철도 산업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특히 국제적 경쟁력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우리 철도 산업은 고속철 개통으로 한 단계 도약했습니다. 기술은 선진국에 매우 근접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차량 기술은 선진국과 대등합니다. 신호 체계 분야에선 좀 부족합니다. 다행히 정부에서 단숨에 선진국 수준을 뛰어넘기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성공하면 기술에선 일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시장이 작다는 사정이 근본적 제약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내수가 작으니 우리 철도 기업들은 작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큰 철도 기업인 현대로템이 세계 시장의 2.3%를 차지해 10위권에 오른 정도입니다.

 원래 철도 산업은 자동차 산업이나 항공기 산업처럼 많은 부품들을 조립하는 산업입니다. 지금 우리 철도 산업엔 그런 부품 업체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 점이 우리 철도 산업의 취약점이죠. 게다가 이제는 차량 조립업체가 모든 부품들을 조립하기보다는 중간 부품업체들이 부품들을 조립해 모듈(module)을 만들고 조립업체가 그 모듈들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모듈 생산업체들이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립업체들만으로 선진국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모듈화는 자동차, 선박, 항공기에서 이미 오래전에 뚜렷해진 추세 아닙니까. 우리 시장의 반응이 늦었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추세에 따를 만큼 크고 능력 있는 부품 기업들이 적어서 우리 철도 산업의 발전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생산 원가가 높아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대기업들은 세계를 상대하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그래서 모든 면들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생산성에 비해 너무 높은 임금이 경쟁력을 줄입니다. 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을 조금 넘는데 임금은 훨씬 높습니다. 철도 산업은 사정이 어떻습니까.

 “예외가 아닙니다. 경쟁력이 높을 수 없죠. 낮은 생산성과 높은 임금이라는 제약 조건을 뛰어넘으려면 자동화가 필요합니다만 우리 기업들의 규모가 워낙 작으니 자동화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 시장이 작기 때문에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작은 시장에서 자란 우리 기업들은 작아서 규모의 경제를 얻기 어렵고 자연히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셈입니다.”

 -중국의 철도 산업이 경쟁력이 뛰어나고 합니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나요.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아주 위협적이죠. 중국은 워낙 넓은 나라라서 철도 산업의 경쟁력이 원래 높습니다. 근년엔 방대한 고속철 망(network)을 건설하면서 기술과 경험을 얻었습니다. 임금은 낮은 편이지만 생산성은 빠르게 향상되어 제조 원가가 낮습니다. 그런 판에 국가의 지원까지 받습니다. 그렇게 갖춘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습니다. 당분간 어느 나라도 중국과 경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기업들은 원가를 낮춰 경쟁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여러 해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유라시아 횡단 철도가 관심을 끌었습니다. 현실성이 있는 얘기인지.

 “유라시아 횡단 철도는 현재 네 노선이 있습니다. 맨 동쪽 노선이 러시아가 오래전에 건설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입니다. 그 서쪽에 중국을 거치는 노선 셋이 있습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운영했던 만주 노선(TMR), 몽골을 거치는 노선(TMGR), 그리고 중국 북부를 거쳐 신장 지역을 지나 중앙아시아로 가는 중국 횡단 노선(TCR)입니다. 이 네 노선 가운데 가장 유망한 것은 TCR입니다. 이 노선은 중국 정부의 서역 진출 정책에 힘입어 이미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중국과 독일이 연 50회 이상 정기 운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유라시아 횡단 철도를 논의하면서 TSR에 관한 논의만 무성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TCR도 이미 독일까지 연결되어 있고 우리나라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연결을 고려할 때엔 TSR보다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중 열차 페리가 된다면 북한을 통과하는 것보다 1000㎞ 이상 짧고 북한의 텃세도 없습니다. 그래서 TSR과 함께 TCR도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TSR만 논의할 경우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설 여지고 크죠.”

 -북한 철도가 열악하다 하셨는데 북한 철도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우리 시민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상황이 안 좋습니다. 북한의 철도망은 5400㎞가량인데 일본이 놓은 철도를 그대로 썼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나쁘다 보니 70년 동안 보선이 거의 안 된 것 같습니다. 철도는 무거운 차량이 다니므로 끊임없이 보선이 필요합니다.

 보선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북한 철도가 부실한 것은 당연하죠. 노반의 자갈들이 많이 유실되고 침목은 삭았고 주민들이 땔감으로 가져가서 아예 없어진 구간들도 있고 새로 댄 침목은 가공하지 않은 둥근 원목인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레일은 닳았고 새 레일이 공급되지 않아 복선의 한쪽을 뜯어서 쓰는 카니벌라이징(cannibalizing)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식민 통치 아래 복선이었던 철도가 지금은 단선인 경우도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차량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유리창이 깨어지면 송판을 댄 채로 쓴다고 합니다. 터널은 물이 새고 백태가 끼어 붕괴 위험이 높고, 철교도 부식이 심하다고 합니다. 형편이 그렇게 어려우므로 경의선 및 국제선이 시속 60㎞ 정도로 운행하고 다른 노선들은 시속 20㎞ 정도로 운행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승객 수송보다는 화물 수송에 많이 이용된다고 합니다.”

 -사정이 그렇게 열악한 북한 철도와 우리 철도를 연결할 때 나올 문제는 없습니까.

 “많죠. 북한 철도는 거의 다 전철화되었는데, 일본 사람들이 썼던 대로 직류 3000볼트를 아직 씁니다. 우리는 교류 2만5000볼트를 쓰죠. 그래서 조정이 필요합니다. 신호 체계도 많이 다릅니다. 그런 기술적 문제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 철도가 그대로 쓰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죠. 우리가 북한과 철도를 연결하면 노반을 빼놓고는 철도를 새로 놓는 수준으로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투자는 상당할 텐데 과연 경제적으로 타당한가요.

 “북한과 철도망을 연결하는 일은 당장은 투자 효율이 낮겠지요. 투자액은 엄청난데 화물이 적어 수익을 내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통일을 위한 준비로 본다면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북한과의 거래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정치적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요.”

 -남북한이 철도망을 연결하는 사업의 타당성은 궁극적으로 유라시아 횡단 철도의 경제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철도에 대한 대체 교통 수단들이 계속 나오고 성능이 빠르게 향상되므로 장거리 철도는 경쟁력을 지니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유라시아 횡단 철도는 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데, 북극 항로가 활짝 열리면 과연 경제성을 지닐 수 있을까요.

 “옳은 지적입니다. 그래도 우리 화물이 TCR을 이용하는 것은 좋은 방안으로 보입니다. 중국 내륙의 인구 많은 지역을 지나고 중앙아시아를 거치므로 나름 경제성을 확보했다고 봅니다.”

 -이번에 정부가 제안한 대로 가까운 시기에 북한과 철도망을 연결하는 일은 어떠한가요. 현재 상황에서 타당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기술적 문제들은 극복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효율은 어쩔 수 없이 낮겠지만 차츰 향상시키면 될 것입니다. 경제적 타당성은 단기적으로는 확보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통일을 바라보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 정권은 불안정하고 신의나 도덕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 정권과 협력해 북한 철도의 현대화와 같은 큰일을 추진하는 것은 큰 모험입니다. 만일 우리가 북한 철도의 현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시일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고속철을 놓는 데 걸린 시간을 고려하면 우리 가 적극적으로 투자할 경우 5년이나 6년이면 경의선 현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유라시아 횡단 철도의 시발점을 일본으로 하는 방안이 논의된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탐탁지 않습니다. 철도는 시발점이나 종착점에서 혜택을 많이 보는데 일본이 한끝이 되면 우리는 남는 게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를 아예 거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습니다.(웃음)”

 -현대의 교통 수단들은 많은 사람을 싣고 빠르게 움직이므로 안전성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철도는 어떤가요. KTX가 사고가 잦고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들리는데요.

 “사고와 운행장애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고는 승객이 해를 입는 경우고 운행장애는 고장으로 열차가 운행에 지장을 받거나 멈춘 경우를 뜻합니다. 많은 부품들로 이루어지고 무척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이므로 고속철 차량이 고장이 잦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시민들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고는 우리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주 난 것은 아닙니다. KTX의 경우 얼마 전 광명역에서 신호 체계 문제로 탈선한 것이 유일한 사고입니다. 언론에서 사고와 운행장애를 구별해 보도하면 시민들의 인식이 좀 달라질 것입니다. 물론 늘 안전에 마음을 쓰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해야 되죠.”

 -아, 그런가요. KTX가 정말로 한 번밖에 사고가 없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처음 고속철 경부선을 놓을 때는 표준을 훨씬 넘는 안전 기준들을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비용도 훨씬 많이 들어갔습니다. 호남선을 놓을 때는 자신이 생겼죠. 그래서 표준에 보다 근접한 기준을 설정해 비용을 상당히 줄였습니다. 그렇게 배워가는 것이죠.”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철도 산업의 미래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철도의 핵심은 고속전철입니다. 다른 교통 수단과 경쟁하려면 역시 속도가 중요합니다. 고속전철이 경쟁력을 지닌 것은 중거리입니다. 대략 150㎞에서 600㎞ 사이의 구간이죠. 이 구간에선 고속전철이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하리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전국이 이 구간에 듭니다. 우리나라에선 철도의 앞날이 무척 밝습니다.

 우리 철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생애주기원가(Life Cycle Cost) 제도의 도입입니다. 설비를 들여올 때 설비의 수명 안에 필요한 부품들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죠. 그래야 비용도 덜 들고 안전성도 높아집니다.”

 -중국에선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고속전철을 운행한다고 들었는데요. 상당히 먼 거리인데….

 “상하이에서 베이징 사이에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고속전철은 무척 길지만 실은 중거리 전철의 연속입니다.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가는 승객은 주로 저녁에 출발해 새벽에 도착하는(From Sunset To Dawn) 승객을 상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구 많고 땅이 넓은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죠.”

 -알겠습니다. 해 주신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 후기] 대륙 연결 꿈꾸는 철도전문가

어릴 적 들은 도술들 가운데 가장 자주 들었고 유난히 경이로웠던 것은 축지법(縮地法)이었다. ‘하루 안에 서울도 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바람처럼 날아가는 도인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달구지 타고 읍내 장에 가던 세상에서 음속에 가까운 비행기를 타고 먼 대륙을 한나절에 가는 세상으로 바뀌는 데, 반세기가 채 안 걸렸다. 어찔한 변화다. 그만큼 수송 수단의 발전은 혁명적이고 중요하다.

 송달호 박사와 찻집에서 만나 유라시아 횡단 철도의 전망을 얘기할 때는 옆 사람들이 따가운 눈길을 보낼 만큼 목소리가 높았다. 남북한 철도망의 연결 제안을 평가할 때도 분위기가 밝았다. 배를 연구하는 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터라 수송 수단에 관한 얘기는 나에게 늘 흥미롭다. 과학소설 작가인지라 로켓이나 우주선과 같은 미래의 수송 수단에 대해선 직업적 관심도 크다.

 화제가 우리 철도 기업들의 경쟁력으로 옮아가자 분위기가 문득 가라앉았다. 중국 기업들이 워낙 싼값에 응찰하므로 해외 수주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대책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낮은 생산성이었다. 임금은 어떤 나라보다 높은데, 노동 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이라는 사정은 철도 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송달호(宋達鎬)는 …

1947년 출생. 서울대 공과대학 및 리하이(Lehigh)대에서 기계공학 공부(공학 박사). 현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 한국철도학회장, 우송대 철도대학원장 역임. 한국 고속전철사업에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