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식민주의 동아국에 번져|햄버거 맛으로 후진국을 길들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제 3세계에 미치는 선진국들의 힘을 얘기할 때 흔히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 측면에서의 일방통행적 신식민주의가 거론되곤한다. 그러나 실생활의 차원에서 최근 10여 년사이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나라들이 겪은 가장 넓고 깊은 변화는 「햄버거혁명」 「식품식민주의」란 말이 상징하는 식생활의 서구화 및 식품의 대외의존도 심화 현상이다. 서양산식품과 서양풍조리법이 제 3세계국민들의 환심과 입맛을 사로잡고, 나아가선 =호주머니까지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들어오일 달러로 떼부자가 된 중동사람들의 경우 70년엔 3백10만t 정도이던 연간 식품수입량이 80년에는 5배인 1천5백만t으로 늘어났다. 대금으로 나가는 외화는 무려 30억달러(2조1천억원) .
60년대 까지만 해도 식략을 자급자족하던 아프리카 나라들도 요즘은 외국의 곡식과 식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는 나이지리아. 한때 아프리카에서 가장 식품을 많이 수출하던 이 나라가 오일달러로 부자가 되고나서 부터는 식량생산보다 수입에 재미를 붙여 아프리카 제일의 식품수입국으로 탈바꿈 했다. 올해의 식품수입예산은 24억 달러. 닭고기도 미국에서 비행기로 가져와 먹을 정도다.
보다 눈에 띄는 건 이른바 「햄버거혁명」이다.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중진국과 후진국 어디를 가도 햄버거하 우스가 즐비하다.
「쌀밥의 나라」 중공 배경에다 미국회사가 지은빵공장에선 시간당 1천만백 덩어리의 식빵을 생산하고 있다.
제 3세계의 식생활이 서구화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어느나라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늘어나는 중간층 국민들 중엔 보다 「고급」스러워보이는 양풍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경제성장에 수반되게 마련인 도시화·도시집중 현상으로 농업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그런가하면 남아도는 곡식과 식품을 팔아 먹으려는 선진국 정부와 장사꾼들은 온갖 수단을 써서 후진국의 식량대외 의존도를 높이려 든다.
이렇게 유발되는 햄버거혁명이 제 3세계국가들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국민의 대부분이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개발도상국가들에선 식량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변수 역할을 한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제 3세계의 저소득층은 수입의 60∼70%를 식비로 쓴다(캐나다의 경우 20%). 이런 나라들에서 비싼 외국식품을 들여다 제값에 팔면 저소득층이 반발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정부는 막대한 지원금을 지출하더라도 식품값을 눌러야 한다.
식량수입대금이니, 지원금이니 해서 돈을 쓰다보면 국제수지도 악학되고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개발계획들도 적지않게 포기해야한다.
제 3세계에선 대국으로 꼽는 이집트만 해도 식량자급자족을 등한시한 결과 요즘은 미국의 식량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로 전락했다.
식품보조비는 연간 29억달러-총 예산의 28%다.
미국은 매년 1백50만t의 밀을 이집트에 제공하고있다.
전문가들은 제 3세계의 밀소비량이 급증하는건 국민들의 기호가 변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모자란 식량을 메우는데 밀수입이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햄버거혁명은 근시안적 식품정책의 소산이고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그에 적응할 따름이란 얘기다.
제 3세계 국가들의 「밥줄」을 몇몇 선진국이 휘어잡고 있는 현상은 국제정치와 경제의 불안 요인이될 수도 있다. 70년대에 석유가 정치적 무기로 쓰여졌던 것처럼 식량이 정치도구화할 경우 세계는 또한번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 틀림없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