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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거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짧지 않은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면 누구보다 많은 생활의 기복이 있었던 것같다.
연이은 사업의 실패로 객지에서 떠돌며 샛방을 전전하고 한끼 식사를 걱정할 때도 있었다.
그이가 직장을 구해 부산을 떠나도 우리는 그곳에 남아야했다. 헤어져 생활한 l년여동안의 내꿈은 작은 전세방이라도 마련하여 기숙사 생활을하는 그이와함께 생활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1년전 소원대로 그이의 직장앞으로 이사를 하고보니 이제 내 욕심은 점점 부피가 커가나보다 가족이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그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작은 내집이 갖고 싶고 컬러TV에 전화도 갖추고 싶어진다.
모처럼 쉬는 그이가,『여보,나도 계획을 세워 목표를 정해놓고 살기로 했어』『무슨 목표예요?』
필경 몇년후엔 내집을 산다든지, 아니면 지금보다 큰 전세방을 얻는다든지, 뻔하리라 생각하며 무심코 물었다.
『응, 사실은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만 갖고는 실천이 어려워서 목표를 정하기로 했어. 다른게 아니고 앞으로 고아원을 설립할 계획이야. 지금 당장 어떻게 하자는게 아니야. 우리가 지금의 처지에서 조금만 더 여유를 갖는다면 우리 아이들보다 불행한 아이들을 보살펴 주기로 하자. 많은 아이를 기르는게 아니고 형편대로 한두명으로 시작해서 차차늘려가면 될거야』
그러고 보니 그이의 옛직장 동료들이 아이들을 너무 좋아한다 하여 고아원 보모라고 별명지어 부르던 일이 생각난다.
그이의 계획을 듣고 잠시 아연했으나 그이의 꿈에 비해 나의 꿈이 얼마나 하찮은가 부끄러움이 앞섰다. 오늘도 시내버스의 묵직한 핸들을 잡고 가로수를 누비며 작은 꿈을 엮을그이를 생각하면 어쩐지 자랑스러워진다.

<사진>김정순/익산시북구최궁동263의11 18통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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