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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정의선의 개혁엔진' 젊은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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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현대·기아차에는 ‘차세대위원회’ 라는 이색적인 사내 조직이 있다. 과장·부장급 20여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35) 기아차 사장을 보좌하는 일을 한다. 이 위원회 멤버가 올해 처음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까지 80여명이 배출됐다.

정 사장은 올 3월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6월에는 현대차 구조조정본부 사장, 현대모비스 기획담당 사장도 함께 맡을 만큼 그룹 내 비중이 커졌다. 이들 3사는 현대.기아차 그룹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세대위원회의 위상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 현대차 부장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K이사는 차세대위원회 위원장 출신이다. 최근에는 기아차 전략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정 사장을 보필하고 있다.

위원회 멤버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사에서 모임을 열고 자동차 사업의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 위원장은 정 사장에게 회의 결과를 직접 보고 한다. 정 사장은 매년 두세 차례가량 참석해 회식도 함께 한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특히 정 사장은 도요타의 해외진출 전략과 인사시스템, 하이브리드카에 대해 관심이 많아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를 많이 주문한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파업과 추석 연휴 때문에 모임이 없었다. 8월에는 '자동차 산업의 블루오션 전략'이라는 주제를 다뤘고, 6월에는 '도요타의 유럽공장 운영사례'가 중점 논의됐다. 유럽에서 도요타가 벌이는 스포츠 마케팅과 안정적인 고용, 미국 업체와 다른 소형차 전략 등이 다뤄졌다. 지난해에는 현대차가 앞으로 고급 브랜드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방안이 심도 있게 검토되기도 했다. 도요타가 '렉서스'라는 럭셔리 브랜드로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것을 집중 분석했다. 모임 날짜와 연구 주제는 사내 게시판에 게시된다.

위원들의 직급은 부장부터 과장까지다. 현대.기아차의 본부별로 한 명씩 선발한다. 평균 고과가 상위 20% 이내에 들어야 하고 임기는 1년이다. 연령은 대략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다. 이사로 승진하면 위원회에서 자동적으로 빠진다.

현대차 관계자는 "당장 필요한 사업보다는 미래의 사업 방향을 주로 논의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등 순기능이 많다"며 "다만 본부별로 한 명씩만 선발하기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 선망 어린 시선도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의 한 멤버는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매달 5, 6권 정도의 책을 읽어야 하는 등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차세대위원회는 1990년대 중반 당시 정몽규 회장이 과.부장급을 중심으로 미래 자동차 산업의 비전과 전략을 짜기 위해 만든 '주니어 보드'가 전신이다. 이 모임은 정의선 사장이 2001년 현대차 상무를 맡으면서 이름을 '차세대위원회'로 바꿨다. 2002년 정 사장이 현대차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 및 기아차 기획담당 전무로 경영 일선에 본격 나서면서 위원회 활동도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현대차 기획실 관계자는 "회사의 공식 조직이라 인사나 고과에서 가산점을 주지 않는다"며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수한 직원들이 선발되기 때문에 5, 6년쯤 뒤에는 이 위원회 출신이 현대.기아차의 중추 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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