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유전자원 확보전 가열 … 정부·기업·연구원 수수방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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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02면

지난해 10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제12회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총회 개막식 장면. 총회기간 동안 나고야 의정서가 정식 발효됐다.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면서 글로벌 생물유전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생물유전자원의 60~7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해마다 해외에 지불하는 금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환경부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나고야 의정서 발효로 산업계가 추가 지급해야 할 돈은 연간 5096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익 공유율을 5%로 설정했을 때 나온 수치다. 연구개발에 대한 축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014년 국내 생명과학자들이 나고야 의정서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물다양성협약 ‘나고야 의정서’ 발효

 우리나라의 준비 상황은 어떨까. 나고야 대응책은커녕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국내 기업조차 거의 없는 실정이다. 2014년 한국무역협회는 해외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하는 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나고야 의정서 관련 인지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의 86.6%는 나고야 의정서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바이오협회 오기환 실장은 “나고야 의정서 발효로 기업이 해외 생물유전자원을 접근·조달·활용할 때 다양한 법적 분쟁으로 제품 개발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위축으로 미래 성장동력이 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고야 의정서는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논문·특허·기술이전 같은 비경제적 분야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생물유전자원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생명공학 연구자에게는 치명적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진태은 박사는 “연구 성과를 제품화하는 과정에서 분쟁을 우려해 기업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나고야 의정서 관련 정부 대응책은 걸음마 단계다. 관련 법은 국회 상임위에 법안을 접수시킨 상태다. 국내 기업에는 관련 국가별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친다. 환경부는 오히려 국내 생물유전자원 주요 수입국 중국·미국·호주 등이 나고야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아 단기적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방관하는 모양새다. 올해 환경부의 대응 관련 예산도 17억여원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해외 생물유전자원의 이익 공유 비율이나 전통지식 적용 범위, 접근 절차 등을 두고 다양한 법적 분쟁이 일어났을 때다. 중국·인도 등 생물유전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반출 규정을 까다롭게 하거나 아예 해외 유출 자체를 금지할 수 있다. 단순히 국내 원료 수급이 어려워 생물유전자원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인데도 이익 공유를 요구할 수 있다. 동아쏘시오홀딩스 관계자는 “생물유전자원에 대한 기본 입장이 서로 달라 분쟁이 일어나기 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에 지원을 바라는 것은 쉽지 않다. 기업 문제라는 인식에서다. 나고야 의정서로 영향을 받는 바이오·제약·화장품·식품 등 관련 업계에 대한 지원시책을 마련하겠다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윤은정 사무관은 “기업 기밀이 누설되거나 정부가 직접 관여하면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선 기업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과 시각의 차이가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정부가 해외 유전자원을 수입하는 주요 국가와 사전 협약을 진행한다면 기업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기환 실장은 “나고야 의정서 발효 이후의 상황을 예측해 대비하지 않으면 이익 공유 소송은 물론 특허 취소 등 예기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다“며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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