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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9>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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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월27일 새벽, 야크기의 공습이었었다. 적기의 대구공습이 잦아지게되자 나는 대통령에게 야간민정시찰을 중단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요즘 저녁식사후엔 대구거리와 골목·시장을 두루살피며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통령은 내말엔 대답도 않더니 저녁을 마치자 조지사부인을 향해 『오늘은 나혼자 나가서 맛있는 수박을 사먹을테니 부인들은 집이나지키쇼』하며 나갈채비를 하는것이었다.

<국민들 고생이많군>
나는 할수 없이 모시옷을 입혀드리고 조지사부인과 함께 따라나섰다. 시내안내는 늘 조지사부인이 앞장섰다.
대통령은 구멍가게와 싸전을 둘러본뒤 철물점으로 들어가 삽과 괭이같은 농기구들을 이모 저모 살폈다. 『참 잘만들었는데』하자 주인은 『그 삽은 우리국산입니다』고 응수했다.
그 삽은 일제였다. 상인이 대통령에게 거짓말 하는걸 눈치챈 지사부인은 『무엇이나 정직하게 말씀드려야지 속이면 못써요』하고 핀잔을 주자 철물점주인은 멋적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밖에도 피난민대열은 꾸역꾸역 밀러오고있었다. 김천쪽에서 오는 피난민들이었다. 대통령은 침통한 얼굴로 피난민들을 쳐다보며 『우리국민들이 너무 고생을 하는군…』 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날밤 대통령은 이범석장군을 국방장관에 임명할 뜻을 비쳤다. 이장군은 현재 밀리고만 있는 전세를 역전시킬수 있다는 자신감을 대통령에게 보였었다. 지금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그가 필요하다면 꼭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미국이 쉽게 응해주느냐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신국방은 적군이 하동을 지나 진주로 진격하고있으므로 한국군 17연대를 안동에서 진주로 보냈다고 보고했다.
소련은 2개사단을 증파, 남쪽전선을 유린하고 있다. 하동을 공격한 것도 아군의 북쪽병력을 그쪽으로 집중시켜 그 공백으로 북괴군의 남하를 쉽게할 목적이었다.
마산도 위험하다. 남원은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진주에서 적을 막지 못한다면 부산의 운명도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무초」대사와 「노블」서기관이 상오11시에 대통령을 만나러왔다. 이자리에서 대통령은 이범석장군을 국방장관에 임명하겠다고했다.
「무초」대사는 『신국방이 잘해내고있다』며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로봐 경질하지 않는것이좋다』고 했다. 신국방은 또 유임됐다. 대통령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죽창제작 대항할터>
대통령은 다시한번 무기원조를 요구했다. 우리는 유년대(유년대)를 조직하고 있고 만일 그들에게 총을 주지않는다면 죽창이라도 만들어서 적의 길목을 지키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대구남쪽 산맥에 이미 적의 게릴라 3개부대가 숨어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대구가 적의수중에 들어가면 부산이 시간문제이므로 대구사수는 절대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미군들은 이사태의 긴박성을 실감하지 못하고있는것 같았다. 「존·스톤」기자는 미군들이 「하지」장군을 한국에 데려오려고 애쓰고있다고 했다. 그는 2차대전때 일본군과 밀림에서 싸워보았기때문에 「워커」장군보다 이곳에서 잘싸울수있을것으로 믿고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말에 한국민은 「하지」장군에 호감을 갖고있지 않으니 그렇게되면 대단히 불행한 일이고 모든 일을 악화시킬것이라고 단호히 반대했다.
대통령은 「하지」장군을 아주 싫어했다.
장군을 「하지·보이」라고 깎아 부를 정도였다. 대전에 있을때 그가 미8군사령관으로 내정됐을때도 대통령의 비토로「워커」가 대신 파한된것이다.
오늘도 비행기는 출격하지 못했다. 우리군대는 엄호폭격을 받을수가 없다. 찌푸린 하늘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날씨가 계속 이렇다면 큰 낭패다.
미공군은 탱크를 부술수 있는 신형 로키트탄을 사용하고있다. 최소한 이 신형로키트탄 앞에서만은 적의 탱크도 벌벌 떠는 형편이다. 김천쪽에서 내려온 피난민은 2천명이나 된다.
새벽3시30분에 적이 벌써 함양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적은 우리부대가 진주로 이동한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날씨흐려 가슴답답>
우리에겐 사람은 있으나 무장한 군인은 없다. 대통령은 「워커」장군과 「무초」대사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에게 또 한번 무기공급을 애원할 참이다. 어차피 우리는 죽지 않으면 안된다. 적에게 잡히는 수모 보다 죽음의 길이 낫기때문이다.
오오 하느님. 우리를 도우소서!
7월29일, 어제 기다리던 「워커」장군과 「무초」대사는 오지 않았다. 대통령은 「맥아더」장군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전에 임하는 미국의 태도에 관해 견해를 밝힌 대통령의 7월24일자 타임지기사(18페이지)를 읽었다.
『미군은 지금 공격하기를 원치않는다. 지연작전을 펴면서 서서히 퇴각하고 있다. 그들은 부산까지 물러날 것이다. 첫째 그들은 모든 물자와 장비를 갖추지 못해서 그렇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고 그도 일리있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작전계획이 정치적 상황때문이라는 것을 일찌기 염려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골자였다.
아침에 내무장관 조병옥박사가 「워커」장군을 만났다. 조장관은 미군이 전면공격만을 생각할뿐 도처에서 준동하는 게릴라들에 대해서는 무방비라고 비난했다. 그는 어제저녁 북괴게릴라군이 울산에 침투한것을 우리경찰대 50여명이 퇴각시켰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적은 최근에 정규전보다 게릴라전법으로 야금야금 점령지를 넓히고있고 함양·남원이 이런식에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전국민에 격려문>
대통령은 대구시민에게 동요하지말고 현위치를 고수하라는 격려문을 내기로했다. 유엔과 미군은 항상 대통령에게 현재의 상황 사실그대로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혼란이 일어나지않는다고 충고해왔다. 국민들도 벌써부터 사실을 알기위해선 일본방송을 들어야겠다며 정부의 발표를 믿지않으려 했다. 조박사는 격려문의 취지를 대구시민에 국한시키지 말고 전국민에게 보내는것으로 문귀를 수정하도록 제의했다. 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
국방장관은 백인엽대령이 지휘하는 17연대가 함양∼진주 전선에 투입되기위해 이동중 대구역에 잠시 머물고있다고 보고했다.
나는 타임지(20페이지)에서 백대령에 관해 읽었다. 그는 옹진전투의 영웅이었다. 우리는 17연대의 철수로 북쪽전선이 큰 파국으로 멀어지지않기를 바랄뿐이다.
철수를 해서는 안됐지만 지금당장 어쩔도리가 없는것 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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