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적의 부산 압박소식에 낙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적은 목포와 대구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미군들은 적의 전진루트에 비행기를 출격시켜보면 적군이고 탱크고 하나도 보이는게 없다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직까지도 적의 수법을 모르고 있으니 한심한 사람들이다.
공산군은 낮에는 완전히 몸을 숨겼다가 밤이면 이동하는 전술을 쓰고있는 것이다. 낮에는 더위를 피해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밤의 전진속도는 빨랐다. 공산군 수법을 미군들에게 귀가 아프도록 설명해도 믿으려 하질 않는다.

<반찬가짓수 줄여라>
26일 저녁은 대통령과 조지사 부인, 나 셋이서만 식사를 했다.
메뉴는 가지나물·북어찜·열무김치와 고기넣은 두부찌개였다.
대통령은 반찬 가지 수가 너무 많다고 다음부터는 두가지만 차려놓도록 또다시 당부했다.
부인의 음식솜씨가 좋아서 대통령은 반찬까지도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27일 새벽, 갑작스런 비행기폭음에 대통령과 나는 소스라쳐 깨어났다. 시계는 새벽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적의 야크기가 대구상공에 나타난 것이다. 야크기는 우리집 위를 바짝 지나갔다.
적기는 대구운동장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갔다. 내 생각에 그들은 운동장을 비행장으로 오인한 것 같다.
그당시 대구지사관저 앞마당에는 방공호가 있었으나 피할 틈도 없었다. 국방장관은 정오쯤 와서 하동은 적의 수중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채병덕 장군이 전투중 상오11시45분에 전사했다. 그는 무기에 관한 전문지식과 무기관리에 관한한 제1인자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던 장군이다.
외모와 첫인상만을 갖고 사람을 판단하려는게 미대사관 사람들이었다. 대사관과 미 장성들은 한국에서 제일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장성을 대통렁은 하필이면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했는가고 의문들을 가졌다.
미국이 이런 의문을 나타낼 때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채 장군 (My general choi)은 날씬한 장군이 못 가진 기민성을 갖고 있어요. 전문적인 군사지식은 물론 우리나라에 무슨 무기가 필요한가를 잘 알고있는 경험으로 뭉쳐진 장군이야. 』
대통령은 또 『미남 장군들의 시원스런 큰 눈이 못 보는 것을 채 장군의 졸리는 듯한 눈은 꿰뚫어 본단 말이야. 』하고 장군을 감싸고 돈적이 있었다.

<미군기의 오폭 계속>
사람들은 채 장군이 너무 뚱뚱해 걸어가는지 굴러가는지 모르겠다고 입방아를 찧었지만 그는 정말로 충의가 있는 한국의 장군이었다.
채 장군의 전사소식은 오늘 새벽 적기의 폭음이 찢어놓은 가슴의 상처이상으로 우리를 비통하게 했다.
아군기의 오폭(오폭)은 계속 되었다. 우리 폭격기들은 꼭 한발 늦게 출격하여 적군이 다 떠나버린 장소에 폭탄을 투하했다. 때로는 적군 몇 백명이 숨어있다는 정보에 따라 출격한 비행기들이 아예 시 전체를 폭격해서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영동에서의 미기갑부대 전투였다. 그들은 영동을 원형포위하고 전가옥을 파괴하다시피 하면서 적과 싸웠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적사살, 또는 포로로 2천여명의 전과를 올렸다. 아군의 피해는 40여명뿐이었다.
싸움에 이기고도 미군들은 3마일을 후퇴했다. 승리뒤에도 후퇴였다.
그들은 지연작전을 펴고 있었다. 충분한 보급을 받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 지연작전은 우리의 땅을 야금야금 잃게 하고 있다.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란 것을 확신하지만 그동안 우리백성은 어디로 가서 있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의 질문이고 문제였다.

<한국군의 무장강조>
하오 2시15분에 「맥아더」장군이 대통령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대롱령은 부산에 가있던 김활난 박사를 불렀다. 대통령은 유엔회원국들에 구호물자를 경제원조처에 맡기지 말고 직접 한국정부로 보내도록 요청하라고 김 박사에게 지시했다.
「맥아더」사령관은 「워커」·「아먼드」·「휘트니」장군과 「스트레트·마이어」제독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대통령과 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일본에서 올 수 있는 무기는 모두 건너 왔고 8월초에 미 본토로 부터의 보급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충분한 인력이 있다. 사람이 부족한게 아니라 그들을 무장시킬 무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적은 우리 피난민을 앞세워 방패삼아 쳐들어 오고있고 때문에 아군은 적을 보고도 속수무책인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이날 아직도 미군이 후퇴작전을 지속할 심산이라는걸 눈치챘다. 미군에 북진생각은 없다.
국방장관도 어제 한국 제7사단이 진격하려는 것을 미군측이 막았다고 했다.
신 국방은 「워커」에게 『당신은 미8군사령관이오, 아니면 「켈리」장군(사단장)이오?』하고 비꼬았다. 「켈리」장군은 안동에서 미군후방에 포진하고 있는 우리사단을 붙들고 한 발짝도 앞으로 못나가게 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즈의 「존·스톤」기자가 왔다. 그는 미 대사관에서 「무초」대사로 부터 브리핑을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의 작전계획은 적을 퇴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기에 뒤를 끊어 완전 섬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공격은 한두달 안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아군, 곳곳서 밀려>
대통령은 정일권 장군을 불러 우리군대가 단독으로 진격할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정 장군은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문제는 미군이 우리의 단독북진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닥터·노블」은 미대사관에 새로 부임한 해군무관을 데리고와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면서 『육·해·공군 합동작전수행을 위해 그가 파견됐다』고 말했다.
영국해군이 맡고있는 서해안 방어선이 자꾸 뚫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북괴군은 소형보트로 계속 상륙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적이 부산가까이 까지 왔다는 보고에 크게 실망했다. 「워커」장군은 진주에 있는 병력을 하동으로 배치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