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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헌금문제」를 읽고|헌금은 구제보다 복음위한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1983년 6월20일 중앙일보 6면에 기고한 이철훈씨의 『한국교회 헌금의 성서적 문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한다.
첫째는 헌금을 드리는 동기의 문제다.
헌금은 성도가 진리를 깨닫고 은혜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교회교인들은 아주 가난중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다』고 칭찬했다 (『고린도후서』1장6절).
둘째는 헌금의 종류다. 헌금의 종류는 많이 있다. 그런데 국가세금종류(27종)보다 훨씬 많은, 무려 38종이나 된다고 기독교 신도연맹 심포지엄에서 밝혀졌다. 이렇게 현금의 종류가 많은 것은 돈을 많이 거두는 방법의 하나다. 돈을 거두어들이는 방법이라면 이는 분명 악이다.
그러나 성경에 없는 종류의 헌금이라고해서 비성서적이며 죄라고 할수는 없다. 월정현금이 성서에 없다고해서 비성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성경에 없는 것이라도 오늘의 교회에서 하고있는 헌금이 많이 있다. 교회가 은혜받는 일에 필요해서 하는 일이라면 비성서적이 아니다.
성가대는 구약에 있었다. 그렇다고 성가대를 가진 교회를 비성서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성경에 없어도 해야하는 경우도 있고 안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진리생활에 합당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월정·주정헌금은 십일조 헌금을 못하는 교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섬기는 일에 동참하게하는 일중의 하나다. 그러나 주정헌금은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려면 돈을 생각하게 되므로 이 점에서 볼때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목사사택 유지비 헌금을 하는게 비성서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목회자들의 교만한 짓이겠는가? 목사는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교회에서 사례를 해야하고 사택을 주어야 마당하다. 이렇게 하는 교회가 바로하는 교회다(고린도전서9장3∼11절). 이씨는 십일조헌금은 예수 이전시대의 유물이므로 『율법시대의 유물인 강요적인 십일조법을 하루 속히 없애버려야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모세의 율법인 「십계명」을 오늘의 교회가 왜 지키고 있는가?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었다(마5‥17∼20절). 드리어 완전케하려 오셨다.
십일조의 유래는「모세」시대 이전인「아브라함」때 부터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엘」과 그의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때에 「살렘」왕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인「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려고 전쟁노획물중의 10분의1을 주었던 것이 십일조의 시초다.
어쨌든 십일조헌금은 분명히 성서적인 것이다.
세째는 헌금을 사용함에 있어서의 문제다.
연보하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한 예배다. 따라서 바친 현금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영혼구원하는 일에 사용함이 마땅하다. 지나친 예배당장식이나 직접적 복음사업이외에 사용하는 것은 금해야한다. 교회헌금을 가지고 복음과 관계없는 일에 사용함은 분명 죄악이다.
일제하의 한국교회는 국방헌금 강요엔 반대했다.
그리고 교회헌금은 구제가 근본목적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한 여자가 예수님 머리에 매우 귀한 향유를 가지고 와서 부을 때에 제자들이 분히 여겼다. 많은 돈을 허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자들을 구제함이 좋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가난한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이여자가 내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려 함이니라.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기념하리라 하셨다. 이말씀은 구제를 반대함이 아니다. 다만 구제하는 일보다 복음이 더 크다는 말씀이다. 복음을 위해서 살다보면 구제하게 된다. 그러므로 복음이 우선이고 구제는 그뒤의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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