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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은 능력껏 은밀히 내는것"|한국교회헌금의 성서적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기독교회의 헌금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십일조가 세금의 성격을 띠고 독일등 유럽교회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분열된 많은 교파들은 자기교단 운영을 위해 성서에도 없는 갖가지 헌금갹출방법을 인간의 생각으로 고안해냈다.
한국교회의 헌금은 어느때부터인지 예배시간에 헌금바구니가 등장, 예수의 손을 구걸하는 손으로 만들고 헌금봉투에 이름을 적게해 공개하는등 우스꽝스런 행동이 얼굴을 뜨겁게 하고있다.
구약의 예루살렘성전에는 13개의 읍보궤가 있어 유대인들이 헌금을 자율적으로 봉헌했다.
헌금방법은 예수께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하는 헌금에 이름을 적어내리까, 은밀히 하리까』라고 물어본다면 대답이 자명해질것이다. 『왼손이 하는일을 바른손이 모르게 하고, 겉을 꾸미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을 자신있게 설교할 교역자가 한국에 과연 얼마나있는지.
헌금의 또한가지 폐단은 유대교의 산물인 「맥추감사」를 신약에 도입한것과 전혀 성서에 없는 월정·주정헌금등의 수많은 헌금명목이다.
성서적 근거도 없는 명목을 붙여 교인들에게 목사사택유지비 헌금까지 거두어내는 목회자들은 하느님 말씀을 어긴 교만한 자임에 틀림없다.
세번째 문제점은 십일조를 헌금법으로 채택한 오류다. 십일조는 본래가 의문의 율법이며 이스라엘과 유대인에게만 내려진 규례이지 신약교회에 내려진 규례가 아니다(『신명기』4장1절).
『마태복음』의 십일조도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하신 말씀이며 유대교율법시대의 것이었다. 따라서 십일조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전 세례「요한」때까지의 율법시대에만 효력을 지녔다.
이 의문의 율법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과 동시에 종식됐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어리석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죽음과함께 끝난 율법들중의 하나인 십일소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사도「바울」은 이같은 일을 『신약교회를 대적하는것』이라고 힐난한바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헌금문제는 어떠한 경우에도「세금의 성전」을 띠는 강제성을 가져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기독교회는 초대교회때부터 십일조가 없었다. 이는 지금도 천주교에는 십일조가 없는 사실에서 잘 증명되고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기독교이전 율법시대의 유물인 강요적인 십일조법을 하루속히 없애버려야한다.
교회헌금은 진정한 하느님의 영광과 성서의 감동으로 능력껏 분수에 맞게바칠때 연보의 본뜻을 살릴수있는 것이지「액수경쟁」의 돈내기는 강요된 적선에 불과할뿐인 것이다.
십일조와 각종 겉치레의 헌금이 한국교회에서 폐지되기 어려운것은 수십년동안 십일조등의 헌금이 정당한것으로 여론화됐고 교언의 의무인것처럼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특히 무지한 기독인들은 유대교의 십일조를 신약교회의 절대적인 「하느님 말씀」으로 잘못알고 「의무이행」에 철저한데 신도들을 이같이 오도한 교역자들은 크게 참회해야할 것이다.
교역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쌓아놓은 아성의 벽을 허물려하지않는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교회개혁은 평신도쪽에서부터 시작되는게 바람직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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