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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지폐 발행계기로 본 돈의 탄생과정 |"신권발행하려면 산고만 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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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로운 돈이 일반의 손에 들려지기까지에는 적어도 2년이상 산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한 나라의 얼굴이라고도 비유되는 화폐인만큼 초상이 들어가는 인물의 선정, 도안의 세밀한선·색상·지질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수가 없다. 그러나 돈은 화폐로서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하고 위조와 변조를 막아야 하므로 그 생산과정은 물론, 한국은행권으로 발행되어 통용된 후에도 눈에 보이는 것 이외의 거의 모든 것은 비밀에 불여진다. 또 다시 새로운 돈이 나와 그 통용이 금지된 후에야 돈은 비로소 비밀의 베일을 벗을 수 있다. 지난 11일부터 새로발행되기 시작한 l천원권과 5천원권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은은 지난 81년부터 화폐체계정비계획에 따라 새돈의 발행을 준비해왔고 1천원권과 5천원권은 세로 76mm, 가로1백51∼1백56mm의 종이 한장에 많은 비밀을 담은채 화폐로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새로 나온 돈의 규격·권종·도안·소재·지질·색상등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은 81년 정월, 그해 첫번째로 열린 금통위에서 였다. 새돈의 출생이 최초로 결정된 것이다.
출생결정이 나고서부터 한은은 조폐공사와 함께 실질적인 돈의 제작과정에 들어 갔지만 출생결정이 내려지기까지에도 수많은 과정과 검토가 있었다.
그 가장 중요한 과정중의 하나가 화폐도안의 주소재인 인물을 결정하고 그 초상을 그리는 일이다.
세계 각국의 화폐에는 99%이상이 공통적으로 인물의 초상이 들어간다.
또한 대부분이 정면초상이 아니고 약간 옆에서 비스듬히 본 얼굴 모습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위조를 막기 위해서다.
똑같은 모습의 물건은 많아도 사람의 얼굴모습에는 똑같은 것이 없다. 따라서 화폐에 넣는 그림으로는 사람의 얼굴이 가장 적합하다.
또한 정면 초상보다는 약간 옆에서 본 측면 초상이 더욱 생명감 있고 가장 인상적으로 그릴 수 있다. 따라서 명료하고 섬세한 수많은 선으로 그린 화폐의 측면 인물초상은 예나 지금이나 위조화폐를 가려내는 첫번째 기준이 된다.
한은은 일찌감치 지난73년에 각계의 저명인사들을 대상으로 화폐의 초상에 적합한 인물을 설문조사, 현재 그 순서대로 화폐의 초상을 선정해 쓰고 있다.
당시 선정된 인물들은 세종대왕·이순신·이이·이황·정약용·을지문덕·정몽주·단군·문무왕·김유신·추사 김정희·문익점·장보고·원효대사·서산대사·신사임당·허난설헌등의 순이었다.
한은은 이중 세종대왕으로부터 정몽주까의 7인물을 문공부에 의뢰, 사학자들의 고증을 거친후 얼굴모습을 확정해 초상을 그렸다.
세종대왕과 을지문덕의 초상은 운보 김기창, 이순신·정약용·정몽주의 초상은 월전 장우성, 이황의 초상은 현초 이유태, 이이의 초상은 일랑 이종양화백이 각각 그린 것이다.
이중 을지문덕과 정약용·정몽주의 초상은 아직 화폐의 도안으로 쓰이지 않고 초상의 원본만이 한은에 보관돼 있다.
주소재인 인물의 초상이 결정되면 부소재를 선정해야 한다.
새로나온 돈의 앞면을 보면면 오른쪽에 인물의 초상이 크게 자리잡고 왼쪽에 5천원권은 벼루, 1천원권은 투호(투호)가 3각구도를 이루며 그려져 있다. 과거에는 앞면의 양쪽에 주·소재와 부소재를 똑같은 크기로 좌우대칭이 되게 그려 넣었지만 요즈음은 도안의 안정성을 강조하기위해 이같은 3각 구도를 택한다.
부소재로 채택된 벼루와 투호는 각각 이이와 이황이 생전에 아껴쓰다 남긴 유물로 투호는 정신집중과 가벼운 운동을 위해 화살을 던져넣는 기구다.
이밖에 제3의 부소재로는 십장생중에서 1천원권에는 사슴이, 5천원권에는 학이 골라졌고 뒷면에는 각각 오죽헌과 도산서원의 그림이 들어갔다.
이번에 새로 나온 돈은 처음으로 순선으로 된 유색지를 사용한 것이다. 순선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훨씬 질기고 유색지를 썼기 때문에 그만큼 위조가 힘들다. 5천원권은 연한 황갈색, 1천원권은 연한 자색이 그 바탕색이다.
규격·지질·색상등이 결정되면 한은발권부에서는 전체적인 그림의 배열과 대강의 모습을 도안해서 조폐공사에 넘기고 조폐공사에서는 약20명의 도안사가 인물초상·부소재·숫자·바탕무늬등 한 사람이 하나씩을 맡아 정밀도안에 들어가고 정밀도안이 완성되면 이를 그대로 인쇄판에 조각한다.
화페도안의 조각인 만큼 보통의 조각과는 다르게 매우 어려워 이번에 1천원권의 인물초상조각은 조폐공사가 10년이상 쌓아온 국내기술로 해결했지만 5천원권 초상조각은 막대한 돈을 주고 외국에 부탁해서 파온 것이다.
순선으로 된 화폐용지는 우리기술로 만든 것인데 종이의 제작과정에서 특수한 기술에 의해 숨어있는 그림인 음화가 들어간다.
이밖에 인쇄잉크에는 특수한 화학성분을 섞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특수한 기계장치에 의해서는 위조여부가 가려지게 끔 하고 특히 이번 새돈부터는 잉크자체에 전자감응기능을 할수있는 화학물질이 섞어졌다. 기계가 권종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어느 부분인가는 물론 비밀이다.
이이의 수염일수도 사슴의 뿔일 수도, 숫자가운데의 하나일 수도 있다.
또한 앞으로 새 돈을 가려내고 셀 수 있는 기계는 한은의 「비밀지도」에 의해 새로 개발되어야지 외국의 기계를 수입해와 그대로 쓸수는 없다.
전지에 인쇄되어 나온 새돈들은 조폐공사의 숙련된 여직원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불량품을 골라내게 된다. 예전에는 인쇄기술이 떨어져 10%이상의 불량품이 나왔지만 요즈음은 불량품이 나오는 확률은 l∼2% 선이다.
불량품이 가려지고 나서야 최종적으로 화폐의 고유한 일련번호가 매겨지고 비로소 「진짜돈」으로 통용되기위해 엄중한 호송을 받으며 한은의 금고로 옮겨진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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