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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전제」발판은 마련 | ― 소 안드로포프, 일단 3개요직을 독차지 했지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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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3, 14일 이틀간의 소련공산당중앙위회의와 16일의 최고회의에서 결정된 소련수뇌부의 인사는 크렘린권력집중의 전형적인 과도기적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16일의 최고회의에서 「안드로포프」는 간부회의장(국가원수직)에 선출돼 당서기장과 국방위원회의장등 3개주요직책을 독차지함으로써 외형상 권력절정기의 「브레즈네프」와 같은 지배체제를 갖춘것 처럼 보이고 있다.
그러나「안드로포프」가 국가원수직을 손에 넣을수 있게된 것은 그의 지위가 강화되고 있는 분명한 조짐으로 볼수는 있지만 그가 튼튼한 권력기반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지난해 11월 「안드로포프」가 분서기장으로 선출될 때 그의 라이벌인 「체르넨코」가 추천했던 것처럼 이번 국가원수직 선출에서도 「체르넨코」가 그를 선출하자고 제의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체르넨코」를 비롯, 정치국원중 적지않은 인물들이 「안드로포프」의 지위강화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서방관측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관측은 12∼13일의 중앙위총회결과가 증명한다.
중앙위가 열리기전의 예상으로는 적어도 2∼3명의 새로운 인물이 정치국에 등장할 것으로 추측됐었다.
「브레즈네프」생존시 14명이던 정치국원숫자가 지난 1년반동안 11명으로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안드로포프」로선 아직도 소련지도부내에 뿌리깊게 영향력을 갖고 있는 「브레즈네프」추종세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부패추방·내정개혁 정책추진에 성공을 거두려면 이번 중앙위를 통해 어느정도의 세대교체를 실현했어야 했다.
보수성향이 강하고 고령화된 원로정치국원들의 고집을 꺾고 그들의 동의아래 개혁을 실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15일의 중앙위총회의 인사결과는 새로운 정치국원의 임명 없이 「그리고리·로마노프」(정치국원·레닌그라드연서기장)를 중앙위서기에 임명하고 소연방의 하나인 러시아공화국수상「솔로멘체프」를 당통제위원장(당기위원장)에 임명하는 선에서 주요인사를 끝내 버렸다.
「로마노프」의 서기직 임명은 예상밖이었다는데서 서방관측통들은 놀라고 있다. 「체르넨코」보다는 「안드로포프」에 더 가깝다고 추측되긴 하지만 보수적 성향이 강한데다 「안드로프프」의 개혁정책에 소극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브레즈네프」시절 사치스러운 생활로 고십에 자주 오르내린 인물이기 때문에 부패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는 「안드로포프」로서는 멀리 했음직한 인물이다.
지금까지 정치국원으로서 중앙위서기직을 겸하고있는 인물은 「안드로포프」「체르넨코」 및 농업전문가인 「고르바초프」등 세사람 뿐이었던 점에 비추어 「로마노프」가 그들과 같은 대열에 부상,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은 지금으로선 하나의 수수께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안드로포프」가 최고회의 간부회의장을 맡게됨으로써 그의 지배체제가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저항세력이 아직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번 중앙위총회는 보여 주었다.
특히 「체르넨코」가 첫날 연설에서 「안드로포프」를 찬양하는 듯 하면서 『정치국원들이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한대목을 서방관측통들은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권력암투가 없었다면, 또 의견이 분열된 일이 없었다면 굳이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분석이다.
크렘린내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안드로포프」나 「체르넨코」의 권력투쟁에 있다기 보다는 정치국의 구조적 체질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파벌이 다를지는 몰라도 이들 구성원의 대부분이 급격한 변혁을 바라지 않는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음은 「흐루시초프」시대나 「브레즈네프」시대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드로포프」가 개인적 능력이나 정치감각에서 다른 인물에 비해 뛰어난 것은 확실하지만 그의 과감한 내정개혁주장에 발벗고 나설 동조자들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는 「안드로포프」와 트로이카를 이루고 있다고 표현되는 국방상「우스티노프」나 외상「그로미코」도 그와 정치생명을 같이할 만한 개혁지지파는 못된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안드로포프」도 다른 정치국원들의 의사를 거슬러가며 정치국 보강을 강행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볼수 있다. 그래서 정치국 장악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대신 지난7개월간 공석으로 있던 국가원수직을 가지려고 결심했을 가능성도 있다.
「브레즈네프」가 차지하고 있던 이 자리를 「안드로포프」가 7개월동안 갖지 못한데 대해서도 서방관측통들은 그의 라이벌들이 그동안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안드로포프」의 국가원수직겸무는 정치국을 「안드로포프」의 구미에 맞도록 쇄신하는 대신 나온 타협의 소산일 가능성이 짙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타협의 과정은 점진적인 1인지배체제 강화의 길과 상통하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예는 「브레즈네프」시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번 소련의 두 회의는 「안드로포프」를 전면에 내세운 현 지배체제도 「브레즈네프」시대나 다름없는 속성을 그대로 지속해 나갈 것이란 점을 거듭 보여준 것이다.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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