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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처럼 매일 수업 시나리오 짜는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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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무(無) 수업. 서울 중동중 송영심 역사 교사 얘기다. 그의 수업에서는 세 가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자는 학생이 없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대부분 수업은 학생 절반 이상이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경우가 많은데, 그의 수업에서는 꾸벅꾸벅 조는 학생도 없다. 또 발표를 안 하는 학생이 없다. 교사의 질문에 손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학생도 그의 수업에서는 어느새 ‘발표왕’이 된다. 또 역사 수업인데도 지루해 하는 학생이 없고, 모두가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이유가 뭘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몸으로 체험하는 오감(五感) 활용 수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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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아무리 질(質) 높은 수업을 해도 학생이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교사의 ‘수업 장악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2011년 체벌이 금지된 후 학생들을 통제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송 교사가 ‘숙제’라는 채찍과 ‘숙제 면제’라는 당근을 이용해 학생들을 통제하는 이유다.

 여기에도 전략이 있다. 그는 학년 초인 3월 약 2주에 걸쳐 학생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숙제를 낸다. 학생들이 역사 수업에 질려 있을 때쯤 ‘수업 시간에 열심히 발표한 사람에 한해 과제 면제 혜택을 주겠다’고 알린다. 이후 매 수업 시간 마다 과제를 칠판에 써 놓고, 학생들의 발표를 유도한다. 과제가 하기 싫은 대부분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거다.

 교사가 묻고, 학생이 답하는 이 방식은 단순하지만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송 교사는 “머리로는 딴 생각하면서 손으로 선생님 얘기를 받아 적고 교과서에 밑줄 긋던 아이들이 교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수업을 듣는다”며 “수업에 대한 흥미와 집중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평소에 발표 한 번 안 하던 아이도 그의 수업에는 팔을 높이 들고 “정답을 안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새로운 사실을 익히고 탐구력과 사고력을 키운다.

 문답식으로 수업이 이뤄지니 한 시간 동안 송 교사가 던지는 질문이 많을 때는 50개가 넘는다. 1분에 하나 꼴이다. 수업 내내 질문과 답이 오가니 학생들이 엎드려 자기는커녕 수업 중에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수업 진행 상황에 따라 질문 종류도 다른데, 수업 초반에는 ‘이번 시간에 어떤 시대를 배우냐’와 같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거나 전체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묻는다. 하지만 점점 난이도를 높여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유가 뭔가’ ‘왜 아프리카라고 부를까’와 같이 심도 있는 내용까지 다룬다.

 이외에도 송 교사가 수업 시작 전에 꼭 하는 일이 있다. ‘교과서와 유인물 높이 들기’다. 이때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학생은 교실 뒤에 나가 한 시간 동안 서서 수업을 듣게 한다. 교과서와 유인물 등을 챙기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생각에서다. 이 학생들 역시 교사의 질문에 답하면 제자리에 들어갈 수 있지만 의무적으로 숙제를 해야 한다.

 수업 내내 질의·응답만 하는 건 아니다. 역할극을 통해 학생들이 실제 역사 사건을 체험하는 시간도 갖는다. ‘서양 고대 그리스의 도편추방제’를 예로 들면 이렇다. 깨진 화분이나 도자기 등을 가져오게 해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는 학생의 이름을 적어 내게 하는 식으로 실제 도편추방제를 체험해 보는 식이다. 송 교사는 “눈으로 본 거나 말로 들은 건 쉽게 잊어버리지만 몸으로 익힌 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도 자연스레 향상된다”고 말했다.

 시청각 자료도 많이 쓴다. 미국 남북전쟁과 관련해 영화 ‘노예 12년’을 보여주고, 중국 삼국시대를 가르칠 때는 영화 ‘적벽대전’을 보여주는 식이다. 또 1998년 교사 연수를 하며 만든 홈페이지를 이용해 온라인 토론학습도 한다. 홈페이지에 ‘조선시대 성삼문 등 사육신이 일으킨 복위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질문을 올린 후, 학생들이 각각 찬성과 반대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게 하는 거다. 송 교사는 “홈페이지는 교사가 과제를 내 주고, 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인 동시에 역사 관련 자료를 모아 놓은 정보 창고”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수업 준비 시간이 길다. 보통 한 시간 수업을 위해 3~4시간을 투자한다.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 지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짜는 건 기본이다. 영화감독이 스토리보드 짜듯 전체 수업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놔야 수업을 알차게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매일 신문을 정독하고 TV 뉴스를 시청하면서 학생들이 흥미 가질 만한 자료를 모은다. 뿐만 아니다.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말하는 방법도 늘 점검한다. 교사 생활 시작 1년 후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던 게 계기가 됐다. 설문 조사를 통해 이해도, 말의 빠르기, 숙제 양 등에 대해 물으니 “말이 좀 빠르다”는 의견이 있었던 거다. 이후 틈만 나면 수업을 녹음한 후 반복해 들으며 언어 사용 습관 등을 고쳐 나간다. 올해로 교사 생활 32년째지만, 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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