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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 "그리스부채탕감은 좋은 아이디어"

중앙일보

입력

다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문제다. 글로벌 시장이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년 전처럼 유로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5일 그리스 총선거와 디플레이션(장기 물가하락) 리스크 탓이다.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유명 경제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를 런던에서 만나 그리스 총선과 유로존 등에 대한 의견과 전망을 물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41)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당수가 권력을 쥐는가.
“여론조사를 보는데 집권할 가능성이 꽤 있어 보인다. 그리 놀랄 일이 아닌 게 그리스는 몹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의 정치 리더들이 치프라스를 인정하고 받아들일까.
“(유럽 지도자들이) 비록 싫어하고 동의하지 않는 정부가 선출되더라도 쫓아낼 순 없다. 치프라스가 이겨도 유럽은 받아들일 게다.”
-선거 후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재선거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대혼란이 올 게다. 새 정부가 나올 때까지 모든 게 보류일 테니. (재선거를 하지 않고) 대연정 가능성도 있다. 정말 모르는 상태다. 일관성이 있는 정부가 나오길 기대할 뿐이다.”
-그리스 선거 직후 글로벌 시장은 어떻게 될까.
“매우 판단하기 힘들다. 현재까지는 그리스 상황이 글로벌 시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최근 그리스 국채 금리가 크게 올랐는데도 다른 곳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치인들도 점차 그리스를 '한 지역의 특수한 경우(special one)'로 여기게 됐다. 지도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시장도 그리 여긴다. 그렇다면 유럽 지도자들이 그리스를 아주 엄하게 대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가 일어나도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그래서 아주 강경할 수 있다.”
-치프라스가 당선된다면 바로 부채탕감(헤어컷)부터 요구할 텐데.
“그리스의 부채는 통상적 수준에서 관리 불가능하다. 나를 포함, 대개들 부채탕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결코 상환할 수 없는 규모다. 다만 이자율이 대단히 낮고 경제성장률이 높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자율 1%에, 명목상 성장률이 4%인데다 재정적자가 ‘0’이면 부채는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변수가 있는데 막대한 빚이 있다면 투자자들이 '그리스 정부가 언제든 백기를 들 수 있다'고 여겨 투자를 꺼릴 것이란 점이다. 부채탕감은 그리스 정부가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란 걸 보장하는 것이다. 부채 탕감은 좋은 아이디어다.”
-메르켈이 듣겠나.
“부채탕감에 대해 독일은 아주 적대적이다. 궁극적으로 메르켈은 독일 정치인이다. 메르켈이‘노(No),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할 것 같다. 그게 그리스를 더 그렉시트 방향으로 몰 수 있다. 독일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결국 (부채탕감에 적대적인) 독일 정치와 유로존이 그렉시트 이후에 생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그리스가 원치 않아도 유로존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의미인가.
“맞다. 그리스는 유로존을 떠나길 원치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면, 특히나 일방적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 실제 쫓겨날 수 있다.”
-다른 나라에 전염될 가능성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일단 그리스가 그렉시트 없이 부채탕감을 받는다면 다른 나라도 탕감받고 싶어할 텐데 아마 아일랜드일 것이다. 그리스가 부채탕감도 협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면 단기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인출 사태가 있을 수 있다. 각국 국채 값이 떨어질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충분히 적극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중단기적으론 그리스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데 3, 4년 후면 그리스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제 그리스는 매년 5% 성장한다. 우린 여전히 침체’라며 국가의 정치를 바꿀 수도 있다.”

울프는 칼럼 등에서 "남유럽 물가 하락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줄곧 경고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유로존 전체의 소비자 물가가 한 해 전보다 0.2% 떨어졌다.
-디플레이션의 시작일까.
"에너지와 먹거리 등을 빼고 보면 여전히 1%대니 디플레이션은 아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도 떨어지는 중이다. 디플레이션은 아니지만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는 게 진정한 위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말하는 ‘로플레이션’이다.”
-일본식 장기불황을 걱정하는 전문가도 있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유로존이 일본의 아베노믹스처럼 가기 어렵고 재정정책에 대한 어떤 협정도 없어 재정정책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경제 불황이나 경제적 충격은 일본보다 훨씬 클 것이다.”
-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양적 완화(QE)를 실시할까.
“곧 뭔가 조치를 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이 아니라며 언제 하겠느냐.”
-ECB가 QE를 실시하면 효과가 있을까.
“도움은 될 것이다. 다만 현 상황에 변화를 주려면 막대한 규모여야 한다. 만일 국채를 산다면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민간 부문 채권을 사면 큰 변화를 줄 수 있겠지만 마땅한 채권을 찾기 어렵다. 은행 대출의 경우 평가도 유동화도 어렵다. ECB의 진정한 어려움은 QE를 작동하게 하느냐에 있다.”

요즘 미국 경제학계의 최대 관심은 미국의 탈동조화다. '미 경제가 유럽·중국 등의 경기 둔화에도 나 홀로 잘 굴러갈 수 있을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성장론자들과 IMF 쪽은 해외 상황이 미국 경제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한다.
-올해 미국 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 현재까지 그래왔다. 미국은 내수가 이끄는 거대한 경제다. 올해도 아마도 2~3%는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Fed가 서둘러 기준금리를 올릴까.
“올해 올릴 것이란 게 일반적인 공감대다. 6월 정도로 거론된다. 나는 더 늦추려한다는 쪽이다. (FED 사람들이) 인플레이션 위험이 없으니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늦추자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래도 올해 올리길 기대하는데 (FED가) 결정을 늦춘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완만한 통화 긴축이 6~12월 사이에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 경제는 잘 굴러갈까.
“중국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이긴 하다. 그러나 중국 스스로 엉망진창인 상황으로 만들었다. 끔찍한 딜레마에 처했다. 버블이 줄도록 하면 성장이 상당 기간 떨어질 것이다. 몇 년간 낮은 성장을 하거나 심지어 불황이 올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될까.
"중국은 단기와 장기 어느 쪽을 챙길 지 정해야 한다. 중국이 2년간 아주 낮은 성장을 각오한 채 균형잡히고 소비자 중심 경제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결정을 할 공산이 크다. 그들이 직면한 큰 딜레마다. 이건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때 이루어진 일련의 잘못된 결정 때문이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환율을 낮게 잡아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수요의 원천으로 투자와 수출에 너무 기댔다. 왜곡된 모델을 바로잡기 어렵게 됐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유로화에 스위스프랑을 묶은 고정환율제를 폐지하면서 시장이 영향을 받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신하긴 너무 이르다. 다만 스위스프랑은 더 강세를, 유로는 약세를 보일 것 같다. 스위스프랑이 유로에 고정돼 있는 동안 스위스는 사실상 유로존의 멤버였다. 일종의 그림자 멤버였다. 스위스가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다. 이점이 유로화 가치 상승에 일조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가.
"스위스가 환율 방어를 접으면서 유로화 값이 내리고 있다. 유로화 하락은 유럽경제에 도움이 되고, ECB로서도 목표 인플레이션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다른 국가의 통화를 강하게 해 이들 국가엔 디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수 있다. 이런 효과가 얼마나 클지 불확실하다.”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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