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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군사력 강화 '총총' 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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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북핵 문제를 빌미로 일본의 군사력 강화 행보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본 자민당과 최대 야당인 민주당이 13일 저녁 그동안 '금기사항'이던 유사법제 제정에 합의한 것은 방위정책 기본틀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도 일본의 군사력은 주로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강화돼 왔다. 북한이 1998년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자 일본은 1년 후 주변사태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번에 만들어지는 무력공격사태대처법, 자위대법 개정안,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개정안 등 유사법제 관련 3개 법안은 과거의 법안과는 의미가 다르다.

유사법제는 한마디로 전쟁에 대비한 법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총리의 통수권을 강화하고, 자위대가 국민의 재산권을 규제하거나 국민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 헌법 제9조는 군대 보유와 전쟁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위대는 20여만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은 이지스함 네척 등 첨단 장비와 첩보위성까지 갖춘 군사강국이다.

그럼에도 보수세력과 방위청은 유사법제와 미국 등 동맹국이 전쟁을 하면 후방지원을 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줄곧 요구해 왔다.

일본 주요 신문들은 14일 모두 1면 톱으로 유사법제 제정 합의 사실을 보도하면서 '전후 안보논의 전환점'(아사히), '안보논의 새 단계'(마이니치), '국가의 공백을 메우는 합의'(요미우리)'라고 평가했다.

일부 시민단체나 지방자치단체는 "냉전시대에도 없던 법을 왜 지금 만드는가""일본의 평화가 붕괴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법제 제정을 계기로 보수세력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은 한층 노골화하고, 헌법 제9조 폐기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 요구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방위청 장관,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 부장관 등 보수정치인들은 끊임없는 '북한 때리기'를 통해 국민의 위기의식을 조장하면서 안보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기본방위전략인 '전수(專守)방위' 원칙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90년대 유엔평화협력법안 등 자위대 관련 법안에 줄곧 반대해온 최대 야당이 보수화된 국민 정서에 편승, 유사법제에 합의한 것은 향후 일본의 안보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4일 "야당도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세변화에 맞춰 유연하고, 수권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민주당이 합의한 것 같다"며 "태평양전쟁 후 일본 안전보장 논쟁의 커다란 전환점"이라고 분석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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