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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비상 &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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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국내에 등장한지 10년째를 맞이한 저비용항공사들이 훨훨 날고 있다. 기존 대형항공사들을 위협할 정도로 아성이 대단하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승객을 급격하게 늘려나가더니 지난해 국내선 여객에서는 대형 항공사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저유가 수혜까지 아낌없이 누리는 요즘, 관련 기업들은 신규 항공사 설립 계획을 밝히고 국제 노선을 새로 취항하는 등 여세를 몰아 기존 항공사를 위협할 수준까지 성장세를 이어갈 계획이다.

 저비용항공업계는 지난해 국내선 여객 수송에서 처음으로 대형항공사를 앞질렀다. 한국공항공사 통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에어부산·진에어 등 국적 저비용항공사 5개사가 지난해 수송한 여객은 전체 2437만여명 중 약 1249만명으로 전체 국내선 이용객의 51.25%를 차지했다. 연간 국내선 여객 수송률에서 저비용항공사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대형항공사의 국내선 비중은 뒷걸음치고 있다. 대한항공의 국내선 여객 수송률은 전년대비 3.2%포인트 감소한 27.3%를 기록했고, 아시아나항공은 전년대비 0.8%포인트 증가한 21.4%의 비중을 차지했다.

 대형항공사업계는 ‘점유율 반전’의 영향을 애써 축소하려는 분위기다. 한 대형 항공사 관계자는 “국내선 여객 수송은 분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대에 불과할 정도로 매출 영향이 적다”고 말했다.

 대형항공사는 서울-포항처럼 승객이 적은 상용노선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점유율 면에서 더 밀린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국제선 여객 수를 살펴봐도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업계의 분위기는 확연히 갈린다. 진에어, 에어부산, 티웨이항공의 지난해 국제선 여객 수가 각각 46.4%, 39.8%, 58.7% 늘어난 데 비해 대한항공의 국제선 여객은 전년 대비 0.3% 줄었다. 아시아나도 6.1% 증가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의 해외여행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실질 소득은 제자리걸음이라 저비용항공사가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비용항공 업계는 “항공기와 운항 횟수를 늘려서 내년에는 국내선 비중 60%까지 내다본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저비용항공사, 유가 하락에 원가 절감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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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유가가 내림세를 지속하는 현재 상황도 저비용항공사에게 더 큰 수혜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매출원가에서 유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30~35% 선인 데 반해 저비용 항공사에선 그 비중이 35~40%에 달한다. 대형항공사보다 저유가로 인한 매출원가 절감효과가 더 큰 셈이다.

 상승기류를 탄 업체들은 신규 항공사를 추가 설립하고, 미주 등 장거리 노선 취항에 나서면서 기존 항공사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그룹은 올해 중 제주항공을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다. 3월 초 한국거래소에 상장심사를 청구한다. 투자은행 업계에서는 애경그룹이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저비용항공사 추가 인수합병(M&A)에 나선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저비용항공사 중에서도 최대 규모의 운항 노선을 보유한 제주항공은 2013년 업계 최초로 연매출 4000억원을 넘어선데 이어 지난해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갔다. 유통 기업인 애경은 제주항공을 중심으로 항공업을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을 밝혔다.

 제주항공은 신규 노선 확보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 8일 주 3회 일정으로 부산-괌 노선을 신규 취항하고, 전세기로 다음달 26일까지 부산-태국 치앙마이 노선을 주 4회 운항한다. 3월 말에는 부산-중국 스자좡 노선을 재운항한다. 지방에서 해외여행객이 많은 경상도 지역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여객에만 집중된 사업을 다각화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화물사업이 대표적이다. 2012년부터 시작한 화물사업은 전체 매출에서 1% 비중에 불과하지만 여객사업보다 이익률이 높아 올해 사업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금호아시아나 계열사인 에어부산도 상장을 추진한다.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에어부산에 이어 두 번째 저비용항공사를 올해 안에 만들겠다는 계획을 이달 초에 밝혔다. 에어부산은 부산-옌지 노선을 국적 항공사 중 최초로 취항한데 이어 부산-장가계, 부산-다낭, 부산-괌 등 총 4개 해외 정기노선을 올해 중에 신규 취항한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13대 보유한 항공기 중 2대를 더 좌석이 많은 기종으로 바꿔 늘어나는 승객 수요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에어도 여객기를 늘리고 장거리 노선 확보에 나섰다.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노선 취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에어는 현재 보유한 13대의 항공기에 6대를 추가로 늘릴 계획이다.

 이외에도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5개 업체가 경쟁 중이다. 이스타항공은 외부업체에 아웃소싱으로 운영하던 공항여객서비스를 자회사를 설립해 업무를 이관하는 등 항공서비스 개선에 나섰다. 경쟁업체들에 비해 늦게 출발했지만, 특가 항공권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점유율 확대에 나서는 중이다. 티웨이항공은 여름 성수기인 8월 여객수가 전년 대비 43.2% 증가했을 정도로 선두 기업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비용 적어 “안전 등 서비스 질 낮다” 지적도

 그러나 호황을 맞아 저비용항공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난기류도 우려된다. 일부 기업이 계획대로 추가로 항공사를 설립한다면 7~8개 업체가 난립하는 상황이 된다. 여기에 외국계 저비용항공사들까지 국내 진출을 늘리고 있어 사실상 점유율을 놓고 업체들이 치열하게 격돌한다.

 일각에서는 저비용항공사들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항공 안전 등에 대한 투자가 미비해 사고로 이어진 말레이시아 항공업계와 비슷한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형항공사에서는 “저렴한 항공권을 제공하려 원가를 절감하다 보면 안전 문제에 투자를 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서비스 질에 대한 불만은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다. 노후한 항공기를 대여해 운영하고 정비를 해외에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출발 지연이나 결항도 잦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저비용항공사의 1만회 운항당 사고 등 발생 건수는 0.63건으로 대형 항공사(0.17건)보다 4배나 많다.

 단거리 노선 위주로는 한계가 있어 저비용항공사들이 갈수록 장거리 국제 노선 취항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형 항공사만큼 노선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저비용항공사들의 진출로 국내선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처럼, 현재 아시아권의 중단거리 국제선 경쟁이 과도하다”고 말했다. 중국 지역의 문을 꾸준히 두드리고 있지만 항공자유화협정을 맺고 있지 않아 진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중국 하늘길 문턱을 낮추자니 더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들어올 중국 항공사들이 우려돼 정부는 현 상황을 유지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경쟁 격화에 대비해 저비용항공사가 지금보다 더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계 저비용항공사에 비하면 국적 항공사는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항공사에 비해 20~30% 저렴한 수준인데 절반 가까운 가격에 판매하는 중국 등 외국계 회사에 비하면 턱없이 밀리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박미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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