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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워싱턴 청백윤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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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워터게이트사건 이후 근10년간 미국의 정지인과 공직자들을 발끝으로 걷게 했던 「워싱턴 청백윤리」의 시퍼런 서슬이 요즘들어 적잖이 녹슬고 무뎌진 모양이다.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선뒤 2년여동안 공직자 신분과 윤리에 어긋난 행동을 한 고관의 숫자는 예전 어느 정부때 보다도 많은데도 이에대한 여론의 반응이나 정부의 조처는 놀라울 정도로 미미하고 소극적이어서 정치윤리가 워터게이트이전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두해동안 터진 굵직한 스캔들만 들어봐도 다음과 같다.
▲가장 큰 추문으로 81년 「리처드·앨런」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은 「낸시·레이건」여사와 회견한 일본여성잡지 『주부의 벗』으로부터 현금1천달러가 든 봉투를 받았다가 곤경에 몰렸다.
▲중앙정보국(CIA) 국장 「월리엄·케이시」는 모든 고위관리들이 취임전 재산명세를 밝히도록 한 공직자 재산공개규정을 지키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월리엄·프렌치·스미드」법무장관은 입각하기 전에 이사로 있던 한 회사로부터 전별금조로 5만달러를 받았다.
▲「레이건」측근 「데니스·르블랑」은 명목상으론 정부의 전자통신및 정보처의 간부로 연봉을 4만8천달러 씩이나 받고있지만 실제업무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레이건」소유 목장의 관리및 잡무담당임이 폭로됐다.
▲역시 안보담당 특보인 「토머스·리드」는 지난81년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주식시장내부정보를 이용해 돈을 벌였다고 알려졌는데도 한동안 끄떡 않고 버텼다.
▲「로버트·니모」전 원호처장은 재직시 자기 집무실을 단장하는데 무려 5만4천여 달러의 국가예산을 썼으며 관용차를 개인용도에 돌려쓰기로 유명했다.
▲이밖에도 최근엔 EPA(환경보호청)의 독극성 폐기물처리기금을 둘러싼 의혹사건이 터졌으며 국제홍보처(USIA)는 「와인버거」국방장관의 아들을 비롯해 정부고관의 인척들을 많이 고용했다고 해서 말썽을 빚기도 했다.
어들 추문의 구인공들중 「앨런」과 「니모」, 「리드」, 그리고 「와인버거」장관아들 등은 결국 자리를 물러났으며 「스미드」법무는 전별금 5만달러를 돌려주는등 일부 『정리』조치가 있긴 했지만 어느사건도 「레이건」의 인기엔 영향을 주지 못했다. 또 「레이건」은 부하가 말썽에 휘말려들면 끝까지 편들어 주고 부득이 물러난 사람에겐 다른 부처에 일자리를 마련해주는등 의리 있는 보스노릇을 하고있다.
전임자「카터」때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예산국장 「버트·랜스」가 은행가시절 관련됐던 불법행위 때문에 기소됐을때 워터게이트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미언론은 이 사건을 커다란 추문으로 취급했다. 「카터」의 비서실장이며 이른바 조지아사단의 젊은 기수였던「해밀튼·조던」은 코카인을 복용한 혐의를 받아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다. 두사람은 평결불확정 혹은 증거불충분 등으로 벌을 면하긴 했지만 「카터」정부의 위신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레이건」시대에 들어서 「카터」때보다 훨씬 많은 고관들의 의혹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큰 문제가 되지 않은것은 물론 대통령에게도 한점의 누를 끼치지 않았다. 왜일까?
정치분석가들은 몇가지 이유를 든다. 그 하나는 「역사의 주기」세이다. 듀크대 「제임즈·바버」교수의 주장인데 국민들은 오랜기간 동안 계속 높은 수준의 도덕심과 정의감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 예로 미 국민의 입장에선 「민주주의를 위한 고결한 투쟁」이었던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도 한동안은 국민의 윤리감각이 느슨해져 정부의 부패를 방관만 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워터게이트추문후 몇년 동안은 공직자의 행동에 관한 기대치가 높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하향곡선을 그리는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대통령의 개인적 특징과 지도스타일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항상 도덕과 정의를 강조하고 행정의 모든 부문에 직접 간여한 「카터」대통령의 경우 아랫사람의 아무리 조그마한 추문이라도 마치 끈끈이에 파리붙듯 그에게 달라붙어 괴롭히는데 반해 행정의 시시콜콜한 사항은 모르노라고 공언하는 「레이건」대통령에겐 부하의 웬만한 스캔들은 「마치 오리동에서 물방울 미끄러지듯」비껴간다는 얘기다.
게다가 「레이건」은 행정부경험이 전혀 없는 실업계 인사들을 최근 어느정부 때보다도 많이 기용했다. 이들은 업계에서 몸에 익은 행동기준에 따라 처신하게 마련이어서 「이해상충」비난을 받을 일을 저지르기 십상이다. 그래서 「레이건」아래서 워싱턴의 윤리는 「업계윤리」에 의해 대체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으로 「레이건」정부가 스캔들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PR에 능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오하이오주립대의 정치학자 「존·케셀」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역대 백악관스태프 중에서 언론계나 PR계통의 경험이 있는 사탐들이 차지한 비율을 뽀아볼때 「레이건」팀은 「프랭클린·루스벨트」이후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이 미지와 상징조작을 잘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레이건」시데엔 엄격한 정치윤리는 기대할수 없는것일까. 워터게이트사건후 각종 개혁을 추진해온 『공동목표』란 단체의 지도자 「프레드·워타이머」씨는 그렇게 생각지 않느다.
『우리가 지고 있다곤 믿지 않습니다. 언론도 예나 다름없이 부지런히 파헤치고 있지 않습니까. 의회도 그동안 우리가 세워놓은 기준들이 무너지게 내버려두진 않을 겁니다.』
【워싱턴에서 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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