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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짬뽕 없이 일품 요리로 승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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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호 29면

중식당을 찾는 이유, 대략 이렇다. 일단 편하다. 비 오는 날, 밥하기 싫은 날, 손님이 온 날, 이사하는 날 전화 한 통화로 코앞에 한 상이 차려진다. 또 최대 다수의 최대 만족이 가능하다. 육류부터 채소까지 메뉴가 다양하니 여럿이 모여도 선택의 폭이 넓다. 게다가 짜장면이나 짬뽕만큼 맛의 평준화를 이룩한 음식이 또 어디 있을까. 낯모를 곳에 가서 뭐 먹을까 고민할 땐 가까운 중식당을 찾아 한 그릇 후딱 해치우면 그만이다.

이도은 기자의 ‘거기’: 서교동 ‘진진’

한데 서교동 중식당 ‘진진(津津)’은 이런 보편성을 거부하는 곳이다. “일반 중식당메뉴인 짜장·짬뽕·우동은 내지 않습니다.” 건물 외관 현수막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다. 더 읽어 내려가면 영업 시간도 오후 5시부터 12시요, 배달도 하지 않는단다. 주택가에 자리한데다 외관이고 내부고 여느 동네 중국집과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이 ‘3무(無)’ 원칙의 배포를 이해하게 되는 건 왕육성이란 이름 석 자 때문이다. 이연복·곡금초와 함께 국내 중식 3대 셰프 로 꼽히는 인물이다. 1년 전까지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중식당 ‘대상해’에서 오너 셰프로 활약했는데, 지난해 말 이곳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중국 정통 만찬요리 전문점’의 메뉴는 오향냉채·대게살볶음·부추잡채·깐풍기·멘보샤·마파두부·수제춘권·물만두·XO볶음밥이라는 일품 메뉴 아홉 가지가 전부다. 다른 요리를 꼭 먹겠다면 예약할 때 미리 주문해 두면 된다.

몇 가지를 맛보기로 했다. 셰프가 직접 담근 짜사이(자차이)와 볶은 땅콩으로 허기가 채워질 쯤 오향냉채가 전채로 나온다. 오소리감투(돼지위장) 같은 돼지고기 각종 부위를 팔각·회향·계피·산초·정향 등의 향신료와 함께 삶아 소스를 뿌려 낸 요리다. 차갑다고 하지만 적당한 온기가 있다.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 없이 육질이 부드러운 게 특징. 고기 아래로는 오이가, 위로는 고수와 파채가 듬뿍 올려지는데 그 각각의 식감이 조화롭다.

게살을 계란 흰자와 죽순과 함께 볶은 대게살볶음은 수프처럼 묽어 한 번에 후루룩 넘어간다. 특유의 짭짤함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살짝 더해진 고추 기름이 매콤함을 더한다. 부추잡채 역시 여느 식당에서 보던 모양새가 아니다. 부추이긴 한데 두툼하고 큰 호부추로 만든단다. 일반 부추보다 단맛이 더 난다는 설명에 고기를 빼고 부추만 몇 번 더 씹게 된다.

드디어 멘보샤 차례. 앞서 너무 배를 채우지 말라는 조언이 맞았다. 처음 먹어 본 멘보샤는 빵 사이에 새우살을 넣고 튀긴 중국식 토스트 튀김. ‘대상해’ 시절 왕 셰프의 시그너처 요리라길래 뭐 별건가 싶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만들기가 쉽지 않단다. 오래 튀기면 빵이 타버리기 때문에 겉과 속이 적당히 익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 도톰한 새우살에 감탄하며 아무 생각 없이 먹다간….

호텔급 요리를 지향하는 이곳의 가격은 동네 수준이다. 메뉴당 1~2만원 대. 그때그때 종류를 바꾸되 그 숫자를 10개 내외로 제한하고, 배달이나 홀 서빙 인건비를 빼 값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혹여 다시 찾을 요량이면 회원 가입을 하는 게 낫다. 3만원을 내고 등록하면 주류를 빼고 20%를 할인해 준다.

▶진진: 마포구 서교동 469-67, 전화 070-5035-8878, 오후 5~12시. 월요일 휴무. 오향냉채 1만5000원, 대게살 볶음 2만원, 깐풍기 1만7000원, 멘보사 1만8000원.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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