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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아침에는 왜 일어나기 힘들까

중앙일보

입력

직장인 박모(45·경기도 용인)씨는 최근 이불 속에서 ‘5분만 더’를 되뇌다 두 번이나 지각했다. 박씨는 “휴대전화 알람을 몇 분 단위로 세 번 연속 울리게 맞춰 놨지만 못 듣거나 잠결에 무심코 꺼 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밤이 긴 겨울엔 의외로 숙면을 취하기 힘들다.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는 겨울철의 낮시간이 짧아 불면증 환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겨울철 수면의 양(시간)과 질(숙면)을 결정짓는 세 가지는 멜라토닌ㆍ일조량ㆍ실내외 온도다. 이 중 멜라토닌은 밤이 되면 뇌의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자 수면 유도물질이다. 흔히 생체리듬 조율사로 통한다. 멜라토닌은 낮엔 분비가 급감하고 밤엔 증가한다. 밤에 멜라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하면 보통 2시간 후부터 잠에 든다.

멜라토닌은 햇빛은 물론 형광등 빛, TV에서 나오는 빛 등 모든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밤에 형광등 빛을 일시적으로 쬐어도 분비가 갑자기 급감한다. 촛불 한두 개만 켜 놓아도 분비가 억제될 정도다. 밤에 조명을 끄거나 어둡게 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승철 교수는 “사람의 생체리듬은 1879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이전의 빛 환경에 맞도록 설계돼 있다”며 “겨울철 숙면을 위해선 밤에 멜라토닌 관리와 실내 조명 밝기 등에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이 밤잠이 적은 것도 멜라토닌과 관련 있다. 신생아의 평균 혈중 멜라토닌 농도(mL)는 250pg(피코그램·1조 분의 1g)이지만 20∼30대는 70pg, 50∼70대는 40pg으로 줄어든다.

잠자는 시간은 늘고 질은 떨어진다.

동(冬)곤증이란 말은 따로 없지만 겨울엔 수면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밤이 길어져 멜라토닌이 그만큼 더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에 일조량이 줄어들면 우리 몸의 생체시계가 재조정돼 아침잠이 많아진다. 겨울엔 해가 늦게 떠 평소 일어나던 시간에도 생체시계는 밤이라고 인식해 멜라토닌을 계속 분비한다. 이것이 요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이유다.

겨울엔 수면의 질, 즉 수면밀도가 떨어진다. 잠을 집중적으로 자는 힘이 약해진다는 뜻이다. 충분히 오래 자고도 낮에 활동할 때 몸이 개운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또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활동량이 줄어 숙면이 힘들어진 것도 아침에 ‘5분만 더’를 외치게 한다.

겨울에 아침잠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직장인 등에게는 늦잠이 골칫거리다. 서울 강남구 소재 코슬립수면의원 신홍범 원장은 “시간에 맞춰 직장·학교에 가야 한다면 소리가 아니라 빛 자극 알람을 설정해야 한다”며 “기상해야 하는 시간에 저절로 조명이나 TV 전원이 켜지는 방법”을 권장했다.

추운 날에도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려면 기상 후 햇볕이 잘 들어오도록 커튼을 활짝 열어야 한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홍승봉 교수는 “겨울에도 일정한 시간에 일찍 깨려면 정해진 기상시간 30분쯤 전에 방 안의 형광등을 밝게 켜서 햇빛의 역할을 대신하게 해야 한다”며 “밝은 형광등 빛은 우리 눈을 통해 뇌의 시상하부에 위치한 생체시계에 도달하며, 빛을 감지한 생체시계는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잠에서 깨게 한다”고 설명했다.

목욕하고 한두 시간 있다 자면 좋아

겨울철 아침에 용수철처럼 일어나려면 밤에 숙면을 취해야 한다. 신홍범 원장은 “낮에 야외활동을 통한 일광 노출을 늘리는 것은 겨울밤의 숙면을 돕는다”며 “햇빛이 가장 강한 점심식사 전후에 동료들과 밖에서 차 한 잔 마시면서 대화를 나눌 것”을 주문했다.

숙면은 침실 환경 등 주변 상황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너무 춥거나 더우면 숙면을 취하기 힘들다. 침실의 적정 온도는 20~22도 안팎이므로 보일러·난방매트 등의 온도를 너무 높지 않도록 조절한다.

체온은 약간 낮춰야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 목욕을 15분 정도 하거나 샤워를 한 뒤 한두 시간 지나 체온이 떨어질 때쯤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다. 실내 공기도 숙면에 영향을 미친다. 창문을 꼭 닫아 놓고 사는 겨울철엔 실내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갈 수 있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잠잘 때 호흡이 거칠어지는 등 숙면을 방해한다. 따라서 하루에 두세 번은 잠시라도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야 한다. 방 안에 잎이 넓은 화초나 나무를 키우는 것도 공기 정화에 도움이 된다.

서양에선 잠을 못 이루는 이들에게 ‘따끈한 우유 한 잔에 꿀을 타서 마시라’고 권한다. 우유가 숙면에 이로운 것은 트립토판(아미노산의 일종)이 풍부해서다. 트립토판은 체내에서 세로토닌이란 행복물질의 원료가 되고 세로토닌은 다시 멜라토닌으로 변환된다. 세로토닌은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안겨 주고 심신을 안정시켜 흔히 ‘몸 안의 수면제’로 통한다. 세로토닌은 햇볕을 덜 받고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엔 분비량이 줄어든다.
트립토판은 닭고기ㆍ돼지고기ㆍ오리고기ㆍ생선ㆍ치즈 등에도 들어 있지만 밤에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특히 치즈는 “저녁에 먹으면 악몽을 꾼다”는 서양 속담이 있을 정도다.

자기 전엔 각성 효과가 있는 커피ㆍ홍차ㆍ녹차ㆍ초콜릿ㆍ콜라 등 카페인이 든 음료나 담배는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매운 음식ㆍ훈제육ㆍ토마토ㆍ시금치ㆍ햄ㆍ소시지ㆍ베이컨ㆍ설탕 등도 저녁 늦게 먹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뇌신경 자극물질을 방출시켜 숙면을 방해한다. 늦은 밤 과식을 하거나 저녁을 먹지 않아도 잘 자기 힘들다. 허기가 심하면 우유·양상추ㆍ바나나 샌드위치ㆍ아보카도 등 트립토판이 풍부한 식품으로 간단히 요기하는 게 좋다.

불면증 예방 돕는 허브 발레리안

불면증 환자에게 수면제 대신 발레리안(서양 쥐오줌풀)을 추천하기도 한다. 잠들기 30분∼1시간 전에 400∼800㎎을 복용하거나 차로 달여 마신다. 이 허브는 다음날 졸리는 증상이 없고 집중력에도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일반 수면제와는 달리 의존성ㆍ금단증상도 없다. 물 한 컵에 캐모마일과 라임꽃을 약간 넣어 끓여 마셔도 잠이 잘 온다.

발 마시지도 숙면에 좋다. 보채는 아이의 발을 가볍게 두드려 줘도 달랠 수 있는데 이것이 발마사지(리플렉솔로지)의 기본 원리다. 손가락과 엄지를 이용해 수면을 관장하는 부위를 지압하면 된다. 전문 마사지사가 해 주면 수면 유도 효과가 훨씬 크지만 요령만 익히면 혼자서도 가능하다.
침실에 가벼운 음악을 틀어 놓아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 음악은 심신을 이완시키고 근육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TV를 보면서 잠드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자극적인 공포물·액션물을 보는 것은 잠을 쫓는 행위다. 독서를 하더라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물이나 흥미진진한 책은 피해야 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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