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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학교!] 온라인으로 원어민 수업 '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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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안성종합고 1학년생 20여 명이 온라인 쌍방향 화상 강의를 듣고 있다.

"My work requires me to be creative(내 직업은 창의성이 요구된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성종합고 교실. 영어교사인 자키 쿠퍼가 직업을 알아맞히라는 말과 함께 제시한 첫 번째 힌트를 들은 20명의 학생은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학생들이 답을 하지 않자 쿠퍼 교사는 다음 힌트를 줬다. "I need to take a physical training everyday to maintain my bones and muscles flexible and strong(힘과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체력 단련을 해야 한다)." 쿠퍼 교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학생이 "dancer(무용가)"라고 답했다. 쿠퍼 교사는 곧 가수 '비'의 사진을 보여줬고 교실에선 폭소가 터졌다. 서울 강남의 학원을 연상케 하는 수업 방식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쿠퍼 교사는 교실이 아닌 대형 화면 속에만 존재한다. 그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온라인 쌍방향 화상강의' 현장이다.

안성종고는 5월부터 1학년생 20명(1학년 전체 105명)을 대상으로 매주 한두 차례 메신저를 이용한 화상수업을 하고 있다. 교재는 호주의 어학연구소인 'CEC' 교사들이 직접 개발한 것을 이용한다. 학생들은 쓰기숙제를 e-메일로 보내 호주 현지 교사들의 첨삭지도를 받는다. 숙제는 매주 바뀌는데 지난주 과제는 '성공적인 전화면접을 위한 5가지 전략'이었다.

이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한 호주 그리피스대 정재훈 교수는 "어학연수 효과를 극대화할 방법을 찾다가 나온 방안"이라며 "안성종고 외에 서울 개포중, 수원 소화초등학교도 화상수업을 실시 중인데 처음보다 학생들 실력이 많이 향상됐다"고 감탄했다. 이 학교는 2001년부터 여름방학 때마다 20~30명의 학생을 한 달간 브리즈번 공립학교로 어학연수를 보내 왔다.

학생들 반응도 좋다. 윤석재(16)군은 "예전엔 영어 하면 자신 없었는데 이젠 대충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이 영어로 경찰관이나 기자가 되겠다고 자신의 희망을 거리낌없이 밝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성종고는 앞으로 화상강의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윤치영 인문계 부장교사는 "11월부터 실력이 비슷한 학생끼리 묶어 심화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며 "접속 스케줄만 짜주면 얼마든지 집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중국어 화상강의도 계획하고 있다.

이 학교는 영어 화상강의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어일기나 독후감 쓰는 노트를 학교가 만든 일이다. 윤 교사는 "1999년 인문계를 처음으로 뽑았는데 시골학교다 보니 일반 학교 교육만 해선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며 "그래서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주현(16)양은 "도시 지역 친구들에 비해 공부를 덜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있다"며 "그러나 학교에서 학원에 안 다녀도 이것저것 공부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 좋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은 학교에 대한 달라진 지역의 평가로도 나타났다. 비평준화 지역 학교여서 99년 처음 인문계 학생을 뽑을 때는 합격선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엔 중간실력 이상의 학생이 입학한다. 예전에는 중학교 전교 20등 이내 드는 학생(200점 만점에 190점 이상)이 단 한 명도 없었으나 요즘엔 5명 중 한 명꼴로 안성종고를 택한다고 한다. 명문대 입학생도 해마다 나온다. 김현주(16)양은 "안성에서 가장 센 학교에 재학 중인 친구도 우리 학교에 오고 싶어한다"고 했다.

안성=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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