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가락에 웬 타워팰리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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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죽 한번 읽어보시라. 동요 마냥 통통 튀는 가락에 세태 비트는 풍자의 기운 오롯하다. 이번엔 소리내 읽어보시라. 규칙적인 운율 같은 게 느껴질 것이다. 학교에서 배웠던 '3.5.4.3' 식의 음보가 감지될 것이다.

이 작품은 시조다. 몇 번의 행갈이로 시조가 아닌 듯 보일 뿐이다. 그러나 엄연히 시조다. 겉보기엔 2연 3행으로 나뉘는 자유시 같지만 단시조다. 3행 단시조의 정형성을 띠고 있다.

시조시인 홍성란(47.사진)씨의 '개나리-여의도 의사당 부근'이란 작품이다. 시조의 형식 실험을 꾸준히 시도해온 시인은 이 작품을 비롯해 모두 49편을 묶어 네 번째 시조시집 '바람 불어 그리운 날'(태학사)을 최근 펴냈다. 다른 작품도 '시조스럽지'않게 생겼음은 물론이다.

'타워팰리스 개울 건너 포이동 266번지//개울 건너 큰집 아이 미운 미행 따돌리고 차양 파란 비닐 집 뒷문으로 숨어드는데,…개울 건너 배부른 푸들 웬 '아기'를 가졌다니 수의사 가방 들고 왕진 다녀갈 밖에//행길가 옹그려 떠는 강아지의 젖은 눈'

'개울 건너'란 사설시조의 부분. 1행과 3행은 시조의 율격을 따르지만 2행은 무려 9줄이나 이어진다. 내용은 더 이색적이다. 시조하면 떠오르는 음풍농월이나 자연예찬 등의 시상이 아니다. 서울 강남 풍경을 스케치하면서 빈부격차를 꼬집는다. 시인에게 오늘날 시조의 의미를 물었다.

"지나치게 정형성에 매달리는 건 시조에 대한 외면만 낳을 뿐이다. 원칙만 지키면 된다. 그래야 시조는 옛날의 그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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