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 <삼일제약 대표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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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제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 또래의 사람들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한 일이 많았다.
내가 오늘날 약업계에 종사하게 된 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법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다닐 때는 이러한 포부를 염두에 두고 공부했다.
그러나 2차대전이 일어나고 일제는 우리나라 학생들을 마구 징집해 전선으로 끌어냈다.
해방되기 한해전인 1944년, 나는 성남중학 4학년에 재학중 이었다. 당시 이공계통대학이나 전문학교에 진학한 학생에 대해서는 징집연기의 혜택이 주어졌다. 일제에 의해 명분없는 전쟁에 끌려나가 희생당하기 보다는 징집기피를 결심한 나와 친구들은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징집연기를 목적으로 이공계통의 전문대에 진학하기로 했다.
당시 조선인학생들이 주로 진학한 이과계통 분야는 의학·약전·치전이었는데 나는 시험과목이 가장 적은 약전을 택했다.
내가 지원한 경성약전은 1백30명을 뽑았는데 그중 1백명은 일본인을 뽑도록 원천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결국 조선인은 30명 밖에 들어갈 수 없으나 전체지원자는 4천8백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운좋게 합격되어 오늘날까지 약업계에 종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6·25동란이 일어나면서 군의 약제관으로 입대해 60년까지 군대생활을 하다가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는 명목으로 군에서 제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생활은 하지 않고 군대에서 의무감으로 모시던 분의 도움으로 보사부에 들어가 12년간 공무원생활을 했다.
그러던중 우연히 선배가 운영하던 현재의 회사로 옮기게 되어 아직까지 몸을 담고있다.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신조로 삼고 있는 것은「맡은 일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보람과 성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비록 처음 학창시절에 꿈꾸었던 법관은 되지 못했지만 현재 하고있는 일에 후회는 없다.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기의 진로를 신중히 결정하되 일단 진로가 결정되었으면 뒤를 돌아보고 후회하기 보다는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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