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빚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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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수도가 그 나라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한때 사회당출신의 지사를 낸바 있는 동경이 일본국민의 감정이나 생각을 대표하지 않으며, 파리시민이 프랑스국민의 감정을 대표할 수 없는 것처럼 서울시민이 우리 나라 국민의 감정을 대표할 수는 없겠으나 서울의 중요성은 다른 어느 나라의 수도보다 크다고 하겠다.
상업이나 문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뉴욕에 빼앗기고 있는 워싱턴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서울은 런던이나 파리보다도 기능의 집중도가 심할 뿐만 아니라 인구면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서울시가 이번에는 막대한 액수의 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최근 중앙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서울시가 82년 말 현재 안고 있는 국내외 빚은 모두 1조4천2백9억원에 달하고 있는데 이는 서울시 일반회계 연간예산규모인 6천억원의 2배를 넘는 수준으로서 서울시민 l인당 l5만9천원씩의 빚을 지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빚이 이와 같이 엄청나게 불어난 것은 지하철건설비용을 시가 독자적으로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며 빚의 89·9%가 지하철건설과 관련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엄청난 빚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는 부채의 상환과 관련된 시민부담의 문제다. 부채의 상환규모가 해마다 늘어나 올해는 상환액수가 2천억원 가까이 될 것이며, 지하철 3, 4호선의 원금상환이 시작되는 80년대 후반기에는 연간3천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간 3천억원에 달하는 부채상환이 서울시의 재정력에 비추어 가능하겠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지하철건설을 위해 진 빚은 지하철의 건설이 끝나면 지하철에서 들어오는 수익을 가지고 상환이 가능하다고 난관적으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이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나 서울시도 지하철2, 3, 4호선은 당분간 적자 운영을 면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호선의 경우를 본다면, 84년도에 7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낼 것으로 추정되며 87년도에는 l천2백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3, 4호선도 85년도에 1천억원이상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되며 87년도에는 1천5백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추정이 맞는 것이라면 지하철 2, 3, 4호선은 벌어서 빚을 갚기는 고사하고 지하철운영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메워주는 운영적자보전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하철건설을 위해 진 빚은 서울시 일반회계가 갚아야한다는 얘기가 되며 궁극적으로 시민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결론이 나오게된다.
그런데 서울시 일반회계가 80년대 후반기에 가서 연간 3천억원에 달하는 빚의 상환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86년도의 일반회계 예산규모가 8천9백억원 정도가 된다고 보더라도 정부의 지원 없이 시민부담 만으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부채상환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의 빚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두 번 째 문제는 수도인 까닭에 부담하는 경비다.
서울은 하나의 도시인 동시에 수도이므로 서울시는 도시건설이나 미화를 위한 투자 외에도 수도로서의 기능수행을 위한 각종 자본 지출과 경상지출을 부담해야 한다. 「5·16」광장의 건설, 세종문화회관의 건립 올림픽사업을 위한 투자가 대표적인 예다.
특히 거국적인 성격의 올림픽사업을 위한 서울시의 부담이 너무나 크다는 지적이 많다. 종합운동장 건설비용과 국립경기장 부지 안의 올림픽공원 및 아시아공원부지 보상비용 등은 올림픽조직위원회가 부담해야 할 성격의 경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이를 떠맡아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관련 투자사업뿐만 아니라 수도인 까닭에 부담하는 경비에 대해서는 국고지원이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로 언급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러한 재정난이 서울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뉴욕이나 동경도 경험한 문제라는 점이다. 특히 세인의 이목을 끌었던 뉴욕시의 재정위기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시 직원의 봉급 지불이 염려될 정도로 심각했던 뉴욕의 재정난의 원인이 서울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 사실이나 뉴욕시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상당한 시사를 주는 문제다. 뉴욕시가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8만 명에 달하는 시직원의 감원을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3년간 승급정지, 지하철요금의 대폭인상 등 자체적으로 많은 노력을 한 것이 사실이나 연방정부의 지원에 크게 힘입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의 부채와 관련해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소위 「재정자립도」의 문제다. 엄청난 빚으로 심각한 재정난을 염려하는 서울시의 재정자립도가 96%라는 얘기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의 세입에서 자체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하는 재정자립도라는 개념이 이런 의미에서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80년대 후반에 닥쳐올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시의 재정난의 극복을 위해 감축관리를 비롯한 서울시의 자체적인 노력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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