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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혼 1년-부부싸움이 잦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신혼1년은 한가정의 틀을 잡아가는 시기다. 이때를 지혜롭게 넘기면 부부관계는 물론, 그 가정의 앞날도 평탄하리라 점칠 수 있다.
요즘 젊은 부부 가운데 신혼1년을 견디지 못해 법률상담소를 찾는 사람이 무척 많다. 최근의 신혼1년이 평탄치 못한 일면을 보여준다.
결혼생활 6개월∼1년6개월 된 부부 10쌍을 면담, 그들의 생활과 의식을 알아보고 문제점들을 들어보았다.
『북어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번씩 두들겨야 제 맛이 난다』는 속된 옛말이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이 되었던 이야기.
요즘 젊은 주부들 사이에 「멸치와 남편은 사흘에 한번씩 달달 볶아야 제구실을 한다』는 속어가 예사롭게 나돈다. 부부관계의 어제와 오늘을 가늠케 해주는 말이다.
그러나 전통사회의 짙은 그늘 속에 사는 남편과 전통의식에서의 탈피를 주장하는 아내간의 이견은 오늘의 가정 안에서 심각한 충돌을 일으키는 수가 많다.
이태영 박사(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는 바로 이 같은 현상이 한 여성의 각성과 전통의 고수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마찰이며, 지금이 그 마찰이 가장 많을 수 있는 과도기라 지적하고 있다.
이 과정이 지나가고 부부 평등의 균형 잡힌 시대가 오면 요즘 같은 부부갈등은 그다지 많지 않으리라는 진단.
결혼 2년 미만의 부부가 이혼상담의 18.5%를 차지하는 것이 이 과도기를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정호찬씨(28·서울 강동구 가락동) 박영임씨(28) 부부를 비롯, 신혼생활을 하는 10쌍의 부부들도 부부간의 의견차이나 다툼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전통과 현대적 의식의 차이 때문이 많다고 말한다.
10쌍 가운데 7명의 남편이 퇴근 때 슈퍼마키트에 들러 시장을 보는 경우가 많고, 설겆이며 청소·빨래를 거드는 남편도 5명이나 있어 가사를 분담한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은 젊은 세대 사이에 자리잡혀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쌍의 조사대상 부부는 대졸의 도시인임).
그들은 1, 2년 안에 모두 자녀를 갖기 원하나 남아선호의식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1∼2명의 자녀를 원하며 1명의 경우 딸이라도 좋다고 답하고 있다(3명).
가계를 꾸려 가는 것도 주부중심이 8명으로 가계를 아내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또 결혼 후 택시를 일절 타지 않고 버스를 타며 남편은 퇴근 후 즉시 귀가한다는 알뜰원칙도 지켜지고 있다.
집안에서의 부부평등의식은 이처럼 지난날에 비해 많이 변모한 셈.
그러나 10쌍의 부부가운데 신혼기간동안 한번의 다룸도 없었다는 쌍은 없다. 그들은 심하면 한 달에 한번 정도의 부부싸움을 하고있다.
부부싸움 자체가 칼로 물베기식의 것이긴 하지만 하나씩 쌓여 불만의 덩어리를 만드는 예도 있다.
결혼 1년6개월이 된 김정순씨(26)는 말없는 남편에 대해 불만이 많다. 남편이 가사는 어느 정도 도와주지만 식탁에 앉아서도 말수가 적다는 것이다. 처음 3개월 정도는 그런 대로 지나갔으나 그후부터 혹시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나 아닌지 하는 초조감을 느끼게 되었고, 또 월급 가운데 생활비만 나누어 떼어주는 것까지 불만스럽게되었다는 것. 1년 정도 되어 불만을 터뜨렸을 때 남편은 위로해주거나 달래기는커녕 오히려 손찌검으로 대해왔다고.
결혼 1개월 된 김문희씨(30)의 불만은 또 다른 데 있다.
첫 부부 싸움의 이유는 아내가 남편이 애용하던 낡은 쿠션을 버리고 새것을 마련한 것에서 시작됐다. 남편은 집안 가구나 커튼 등을 상의도 없이 아내혼자 바꾸는 것에서 은근히 불만이 싹트고 있었는데다 어머니가 해준 낡은 쿠션을 의논 없이 버린 것에 화가 난 것이다. 그러나 그 쿠션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난 후 아내 김씨에게는 남편이 어머니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라는 불만이 더해졌다.
박영임씨의 경우 손님을 치를 때마다 의견 차이를 보였다고 했다.
부부다툼의 화해 역할은 대부분 친정식구가 맡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를 전제로 한 대화라고 이들은 말한다.
이를 위해 공동의 취미를 가지고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지만 바쁜 현대생활에서 두 사람만의 시간 갖기가 어렵다고.
이태영박사는 동등한 입장에서의 부부간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남편은 사회생활, 아내는 가사와 육아라는 전통적 역할관념으로서는 동등한 대화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
아내와 남편이 똑같이 사회성을 띠고 똑같이 집에 들어와 가사를 돌보게 되는 역할 전환시기에 있는 연대의 부부에게는 서로의 의견을 가까이 하는 노력과 이해를 앞세운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김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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