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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쿠바 빗장 푸는 문화대사 자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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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중 수교(1992년) 3년 전인 89년 중국 베이징 공연을 성사시켰던 현대무용가 홍신자(65)씨가 이번에는 미수교국 쿠바에서 공연을 펼친다. 홍씨가 이끄는 '웃는돌 무용단'은 11월 베네수엘라.과테말라 순회공연 직후인 18.19일 쿠바 아바나에서 홍신자 안무.연출의 현대무용 '순례'를 선보인다. 쿠바에서 열리는 첫 한국문화 행사로 기록될 '순례'는 절제된 몸 언어를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위적인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외교통상부의 해외 순회 프로그램 일환인데, 제가 먼저 외교부에 쿠바 공연을 제안했습니다. '순례'가 최근 2년간 브라질 등 중남미 7개국에 선보여왔는데 미수교국인 쿠바의 문도 열어보고 싶었던 것이죠. 쿠바 정부에서 공연 비디오 테이프를 요구하더니 금세 오케이 사인이 떨어져서 기쁩니다."

그는 "꼭 평양 공연을 앞둔 마음"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이던 89년 베이징 공연으로 그곳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때문에 지금도 베이징에서는 '현대무용=홍신자'로 통한다고 한다.

98년 예술의 전당 개관 10주년 초청작품인 '순례'는 춤꾼들이 50cm 높이의 목발을 신고 무대에 오른다. 키 높이로만 보자면 이종격투기 K-1의 최홍만 선수를 연상시키지만, 장려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우리 문화를 접한 쿠바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궁금하다"고 말하는 홍씨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인도 수행자 라즈니쉬의 첫 한국인 제자인 홍씨는 명상수행자로도 유명하다. 숙명여대 졸업 뒤 미국 유학과 함께 뒤늦게 현대무용에 뛰어들었던 그는 73년 다시 인도를 찾았다. 그런 치열한 구도생활 3년의 수행 체험을 담은 단행본 '푸나의 추억'을 통해 그는 '자유 의지'를 80년대 독자들에게 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펄펄 끓는 삶의 에너지가 그대를 이끄는 대로 살라"는 메시지로….

인터뷰에는 홍씨의 전 남편인 재미 미술가 이상남(53)씨가 동석했다. 홍씨가 12세 연상이지만, 둘다 용띠라 띠동갑. 81년 결혼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면서 89년 합의 이혼했고 지금은 좋은 친구 사이처럼 지낸다. 이씨는 "홍 선생의 에너지를 한국사회가 잘 이해하고 품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례'는 해외공연에 앞서 제주(3일 한라아트홀)와 경남 거제(5일 문화회관) 대구(11월 2일 시민회관)에서도 선보인다.

글=조우석 문화전문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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