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범죄와 엄벌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강력범들의 범행 수법이 갈수록 잔인하고 흉포해지는 원인의 하나가 엄벌주의에 있다는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11일 일어난 서울 목동의 주부살해 사건이나 지난달 28일의 서울 염창동 모녀 강도살인사건의 경우 범인들이 범행대상인 금품을 빼앗고도 대항할 힘조차 없는 부녀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그 동기를 여러 각도에서 추찰할 수 있으나 엄벌주의 때문에 『붙잡히기만 하면 끝장』이라는 범법자 특유의 절망감에 한 가닥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근래 사법부나 검찰은 각종 범죄에 대해 엄벌주의로 임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검찰은 살인·강도 등 강력사건은 물론 공직자의 부정행위나 밀수·권력층 빙자행위 등 「5대 사범」에 대해서도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법정 최고형을 구형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형벌의 본질을 응보라 하며, 범죄행위에는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가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이라고 하는 이른바 응보형 주의가 퇴색한지는 오래된다. 민주국가에서의 행형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법언이 가리키듯 교육형 주의를 존중하고 있다.
법원이나 검찰이 법정 최고형으로 범인을 다스리려는 추세는 비슷한 범죄의 예방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엄격히 처벌해야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감정이기도하다. 범죄에 대한 이 같은 엄격한 대응이 범죄를 줄이거나 예방하는데 기여하면 몰라도 그것이 도리어 범행수법을 잔인하게 하고 흉포화 시키는 원인이 된다면 범연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사직당국의 범인에 대한 엄벌주의라든지 80년 말부터 시행되고 있는 「사회 보호법」에 따라 사회를 위협하는 고질적인 상습범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정신장애자들에 대해 보안처분·보호처분 제도를 마련한 것은 범죄예방에 그 뜻이 있다.
더우기 최근의 범죄추세를 보면 범인들의 연령이 해마다 연소화하고 있다. 이들의 범행동기라는 것이 아주 사소할 뿐 아니라 별달리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가령 단순하게 용돈이 궁해서 일을 저지른 절도범이 주변의 상황에 따라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고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죄의식이 약하거나 없는 사람일수록 범행수법은 잔인해지게 마련이다.
미국에서 골칫거리인 교도소내 살인사건은 대부분 사형수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도 귀담아 들어야할 대목이다.
말하자면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무슨 일인들 못저지르랴는 극한심리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의 경우만해도 그가 절망적인 탈주를 한 동기는 형량에도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었다. 교도소 출입을 열한 차례나 했던 그는 단순 절도만으로 무기가 구형된 것은 너무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단순절도에 대해 무기가 구형된다면 강도사건이라고 그보다 가벼운 형량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을 많은 범죄자들이 가질 법하다.
교도행정의 현대화, 소내 생활의 개선 등이 논의되고는 있지만 교도소는 역시 교도소지 안락한 곳일 수는 없다.
최근의 사법경향이 응보형주의적인 인상을 띠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재고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범죄자의 장기 격리가 사회를 보호하는 측면은 있을지언정 그것만이 모든 범죄를 예방하는 보장일 수는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법이 만인 앞에 동등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행형의 형평을 기하는 노력을 당국에 촉구하고자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