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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삽질도 못했다, 강남역 침수 해결 빨라야 2017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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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여름 물난리를 겪어온 강남역 일대 보수사업이 올해도 어렵게 됐다. “2015년까지 강남역 침수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서울시의 약속은 공수표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설계안 수정이 거듭되는 와중에 배수로 공사를 맡았던 용역업체가 파산해 시공 자체가 늦어지게 된 것이다.

 13일 서울시 측은 2012년 마련한 ‘유역분리안’에 더해 강남대로 지하에 배수관을 설치하는 ‘유역조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역분리안’이란 교대역 인근에서 반포천으로 가는 물길(배수로)을 추가로 만드는 방안이었다. 이 경우 물길이 분산돼 강남역 인근으로 빗물이 고이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그러다 이번에는 배수관을 설치하는 쪽으로 설계안 추가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김준형 서울시청 도시안전실 하천관리팀장은 “유역조정안을 병행 추진할 것” 이라며 “강남대로 배수관을 설치하는 공사의 경우 기간도 짧고 예산도 적게 들어 계획을 추가하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새로운 설계안의 경우 공사를 마칠 때까지 앞으로 2년 이상, 즉 적어도 2017년 상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직 구체적인 설계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인 데다, 기존 공사를 맡은 용역업체 중 한 곳이 파산해 새로운 용역업체를 결정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2011년 7월, 시간당 90㎜의 폭우로 강남대로가 침수됐다. 거리를 지나던 차량 일부가 물에 잠기는 등 극심한 차량 정체까지 빚어졌다. [사진 트위터 캡쳐

 기존 용역업체 중의 한 곳인 동호는 지난해 7월 파산했다. 이 가운데 서울시는 나머지 용역업체인 현대·범한엔지니어링과 설계 절차도 마무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건설 공사는 기본 계획, 기본 설계, 시수 설계 등의 절차가 마무리돼야 추진할 수 있다. 서울시는 첫 단계(기본 계획)에 2년 넘는 시간을 쏟아붓고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새로운 용역업체는 오는 2월 발주에 들어간다.

 강남역 침수 대책은 지난 4년간 변경을 거듭했다. 유역조정안은 서울시가 내놓은 세 번째 안이다. 첫 번째 안은 ‘대심도 지하저류터널’ 설치였다. 집중호우 때마다 강남 상권과 인근 아파트가 일부 물에 잠기자 당시 서울시장이던 오세훈 시장이 2011년 내놓은 대책으로, 지하에 터널을 뚫어 빗물을 한강으로 빠지게 하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이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오 전 시장의 지하터널 설치 대신 새로운 배수로 설치로 설계안을 내놨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배수관 설치가 추가됐다.

 당초 서울시는 새 배수로를 만드는 유역분리안에 300여억원의 예산을 잡아놨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견적조사를 벌인 결과, 실제 예산은 그 5배인 1500억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준우 서초구의회 의원(서초2·4동)은 “애당초 예산도 잘못 잡았고, 설계도마저도 잘못 짜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시간만 낭비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도대체 진척을 보이지 않는 강남대로 배수 사업, 왜 제자리걸음인 걸까.

 강남권 개발의 역사는 약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당시 정부는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 준공에 발맞춰 837만 평에 달하는 영동지구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반포·청담동 등에 아파트 지구가 대거 들어섰고, 경기고(1976년)·휘문고(1978년) 등 명문고교가 강북에서 이주해 이른바 ‘강남8학군’이 생겨났다.

 하지만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다 보니 우기(雨期)를 대비한 배수체계는 마련되지 못했다. 정부는 뒤늦게 홍수를 예방한다며 반포·서초·사평 펌프장을 잇따라 설치했지만, 주기적인 물난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애당초 배수체계 등 도시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낮은 농경지에 건물을 대거 짓다보니 부작용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질적 침수 지역이던 강남역의 배수사업에 탄력이 붙은 건 호우 피해가 유독 심했던 2010~2011년이다. 강남대로·신논현역 일대에 316세대(2010년), 1214세대(2011년)가 잇따라 침수 피해를 본 거다.

 공사 착공이 다시 미뤄지게 되자, 주민들은 “허탈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서초구민들의 불만이 크다. 서초구민들은 지난 2013년 오 전 시장의 터널 설치안 이행을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벌이다가,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하루빨리 공사를 추진해달라”며 서울시 안을 받아들인 바 있다. 주민 김근환(69·서초2동 거주)씨도 “강남대로 침수가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당국이 몇 년째 시간을 끄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 안 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 시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애당초 강남역 일대는 지형이 낮아 배수 대책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며 “재산 피해는 물론 시민의 안전이 걸려 있어 속도를 늦추더라도 만전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올해 폭우가 내린다면 강남역 침수는 되풀이될 것”이라며 “설계조차 이뤄지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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