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투자기업, 이부진 사장을 영입한 이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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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한국 비즈니스를 위한 묘수.’

중국의 ‘시틱그룹(中信集團·CITIC)’이 최근 이부진(45) 신라호텔 사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요즘 중국 경제계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얘기다. 그 묘수는 창전밍(常振明·59) 시틱그룹 동사장(회장격)이 뒀다. 그는 프로 7단의 바둑 기사다.

요즘은 경영에 바빠 바둑은 두지 않는다. 대신 총성 없는 국제 비즈니스 세계가 그의 바둑 무대다. 그는 평소 직원들에게 “경영은 바둑과 같다”고 강조한다. 초반 포석과 중반 세를 활용한 집행(공격)을 잘해야 승리한다는 게 그의 바둑관이자 경영관이다. 실제로 그는 바둑도 중반의 세력을 염두에 두고 초반 포석을 두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013년 5월 시틱그룹의 총수에 오른 후 이 같은 그의 바둑 경영관을 펼치고 있다.

그가 세계 경영을 위해 가장 먼저 둔 포석은 지난해 8월 시틱그룹의 홍콩 증시 상장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유기업 개혁 정책을 실행으로 옮기면서 동시에 이후 세력(자금)을 활용한 공격적 경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탄이 확보되자 그는 곧바로 중반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일본의 미주호 금융그룹과 향후 양국 금융 비즈니스 확대를 위한 전략적 제휴 체결(8월)→중국 바이리안(百利安) 그룹이 매물로 내놓은 60억7800만 위안(약 1조원) 어치의 호텔과 빌딩 등 부동산 매입 추진(10월)→카타르 국영투자처(QIA)와 중국 인프라에 100억 달러 투자 양해각서 체결(11월)→이부진 사외이사 영입(12월)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어릴 적 칭화대(淸華大) 교수(무선기술)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바둑을 배웠는데 기재가 출중해 1971년 15세 나이로 베이징(北京) 바둑대표팀에 들어갔다. 중국의 기성(棋聖)으로 추앙 받는 녜웨이핑(?衛平) 9단이 팀 동기다. 4년 후인 75년에는 국가대표 바둑팀에 선발됐고 79년에는 중국의 신(新)체육배 바둑대회 3위에 오르며 중국 바둑의 미래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79년 베이징 제2외국어대학에 입학했고 뉴욕 보험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학위를 땄다. 이후 87년부터 시틱에서 일하며 정확한 공격 경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바둑에서 수가 보이는데도 둘까 말까 망설이면 패한다고 강조한다. 이부진 사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도 미래 한국 비즈니스 승리를 위한 공격의 묘수라는 얘기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chkcy@joongang.co.kr

☞ 시틱그룹: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외자 유치와 각종 인프라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중국 최대 국유 투자기업. 그룹 산하에 금융·에너지 등 44개의 계열사가 있다. 2013년 기준 자산은 752조원(삼성 558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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