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과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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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공 여객기의 한국 영토 피랍 사건은 순리대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기체·승객·승무원은 중공에 송환되고 납치 자들은 대한민국 법정에 서게 된다.
한국과 중공의 뜻밖의 직접 대좌가 과연 어떤 여운을 남길지는 차후의 문제고 이제 관심은 6명의 납치자가 부닥칠 앞으로의 운명에 쓸리게 된다.
납치 자들은『중공사회의 폐쇄성이 싫고 그 사회에선 출세하기도 어려워 대만으로의 망명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한 한 중공당국자는 그들을『무기를 탈취한 포도』라고 규정했다. 망명자와 당국의 견해가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망명은 영어로「어사일람」(asylum)이라 부른다. 원래 이 말은 라틴어로 성역이나 성소를, 의미했다.
중세이래 죄인이나 복역자가 이 성소에 숨어들어 관헌의 체포를 피하면서부터 은신처· 도피처를 뜻하게 됐다.
차차 근세에 들어 국제법에서 어사일람은『외국의 정치범에게 주어지는 일시적 보호』, 즉 망명을 뜻하게 됐다.
이밖에도 망명은 대피·피난의 뜻이 강한「레퓨즈」(refuge), 추방의 뜻이 강한「엑사일」(exile)등으로도 불린다. 뉘앙스는 달라도 정치적 탄압, 종교적·민족적 압박을 피하는 행위를 뜻함은 마찬가지다. 유엔 인권선언은『처형을 피해 타국에서 망명을 추구하고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념과 체제가 양극화된 현대에선 망명은 또 다른 말로 설명된다. 바로 탈주자 (디펙터-defector). 단순한 도망자가 아니고『어느 정당이나 주의(doctrine)에서 탈퇴 또는 도망해서 딴 정당이나 주의를 택하는 사람』이다. 공산체제에서 자유세계로 탈출하는 사람은 대개 이런 종류의 망명자로 친다.
망명을 억제하는 노력과 비례해서 망명의 경로도 다양해진다.
국경 초소를 피하거나 배에 숨어드는 일도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번 경우처럼 항공기 납치를 통한 망명이다. 아차 하면 무고한 인명이 대운 희생되기 때문이다.
무고한 희생을 줄이려고, 비록 정의의 망명이라도 납치 자는 일단 재판에 회부하는 것이 최근의 국제 관례다.
71년의「동경협약」은 납치자의 재판관할권은 항공기 등록 국(이번 경우 중공), 체 약국(한국·중공)이 다 가지나『국내법에 따라 행사하는 어떤 재판 관할권도 배제하지 아니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서독엔 폴란드 기나 체코 기가 가끔 납치돼 온다. 납치범들은 예외 없이 일단 서독 법정의 재판에 넘겨진다. 보통 3∼5년형. 본국에 송환돼 엄벌을 받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 망명자는 끊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망명을 바라는 항공기 납치는 3백52건. 이 가운데 국내법에 의한 처벌이 84%, 망명처 제공이 12%, 이륙지로의 송환은 불과 4%이었다.
망명을 추구하는 인권과 항공기 납치를 줄이려는 실정법은 조화를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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