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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의 영국 잠입,「히틀러」와 공모|슈테른지, 진부논란 속 "히틀러 일기" 또 공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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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본=김동수 특파원】서독 슈테른 지는 진부논란이 계속되고 있는『히틀러 일기』중「루돌프·헤스」에 관한 부분을 정리, 그 일부를 5일자 호에서 공개했다. 슈테른 지는「헤스」가 194l년 영국으로 비밀 잠입하던 당시의 배경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하면서「일기」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삽입해 가며 재구성했다. 슈테른 지는「루돌프·헤스」에 관한 부분을 3차례에 나누어 싣고『히틀러 일기』전부를 앞으로 1년6개월에 걸쳐 연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히틀러 일기』가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는 슈테른 지는 3일 서독연방수사국에 몇 권의「일기」를 제출, 정밀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현대과학수사기술을 이용,「히틀러」를 비롯, 당시 그 측근들의 지문채취노력까지 병행되고 있는 연방수사국의 검사에만 열흘정도 걸릴 것으로 보이며 그 데이터분석은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기내용>
슈테른 지는「헤스」에 관한 기록의 표지에『극비, 총통의 사유물 항시 밀폐보관 보르만』이라는 하얀 종이쪽지가 붙어 있다고 공개했다.
기록의 첫 장을 넘기면『「헤스」사건』이라고「히틀러」가 쓴 다음 서명하고 있다. 날짜는 1941년 5월16일.
이 기록은 2차대전이 진행 중이던 l941년 5월 10일 당시 부 총통으로서 나치당서열 제3위이던「헤스」가 영국으로 비밀비행 했던 것은 지금까지 본인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단독행동이 아니라 「히틀러」와 사전에 면밀하게 준비했던 것으로「계획」이란 메모에서 밝히고 있다.
『①「헤스」의 임무가 성공하면 내 양해아래 영국과 협상한다 ②「헤스」가 스파이로 붙잡히면 내가「헤스」로부터 의논 받은 일은 있으나 거절했던 것처럼 꾸민다 ③그의 임무가 완전히 실패하면「헤스」가 미친 상태에 있다고 광고한다』
결국「헤스」의 임무는 실패로 끝나「히틀러」는「계획③」은 실행에 옮겨『「헤스」는 오랫동안 병세가 악화돼 비행기를 타지 못하도록 금지했으나 명령을 어기고 비행기를 타게 됐다』고 당시 발표했다.
2차대전이 촉발되기 꼭 10주전인 1939년 6월 26일 일기는 그러나『「헤스」가 영국문제에 관해 노트를 보냈다.「헤스」가 그렇게 예리한 생각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의 기록은 정말 흥미롭다.』이런 부분은「히틀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영국과 평화관계를 유지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슈테른 측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밤새「헤스」의 편지 노트에 대해 생각했다. 단둘이서 문제에 대해 의논해야겠다』(6월27일),『「헤스」의 노트를 또 읽어봤다. 얼마나 멋지고도 홀가분한가』(6월28일).
1939년 7월 뮌헨에서 나치의「평화당 대회」를 준비하면서도「히틀러」는「헤스」의 계획에 줄곧 신경 쓰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헤스」는 내게 써 보냈던 구상들을 정리중이라고 한다. 단둘이 얘기할 기회를 기다리는 중이다』(7월7일).
이때를 즈음해「히틀러」는 이른바「케이스파이트」즉 폴란드침공계획에 골몰하던 때다. 『최근 수일간은「케이스 파이트」에 매달려 왔다. 이 계획은 이제 완성단계에 이르렀다.「헤스」와 또다시 의논했다. 생각이 다듬어지면 내게 보고하겠지.「헤스」같은 사람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까』(7윌12일).
그후 며칠동안「히틀러」와「헤스」는 비밀계획에 관해 상세히 의논했을 것으로 슈테른 지는 분석했다.
7월 22일자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두고 영국까지 비행하는데 따른 기술적 문제들이 모두 해결돼「히틀러」가 만족한 것으로 결론 짓고 있다.
『「괴링」(제2인자·공군원수)을 다시 불렀다. 성능이 가장 좋은 항공기의 항속거리에 관해 조심스레 알아봤다.「헤스」와 만나「괴링」과의 얘기를 해주었다.「헤스」는 특수비행기가 필요하며 자신이 이미 계획에 착수중이라고 .말했다. 대단한 친구다. 그는 이 문제를 두고 더 이상「괴링」과 얘기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1939년 8월 8일「처칠」이 라디오연설에서「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염려가 있다고 한데 대해『어제「처칠」의 연설내용으로 보아 런던최대의 독종이 누군지 알겠다.「처칠」을 피하든 가 배제해야 한다는「헤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기록한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나서 꼭 1주일 뒤인 1939년 8월15일에는『다시「헤스」에게 계획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물어 왔다』고 적혀 있다.
이런 계획을 추진하면서「히틀러」는 8월23일 소련과 불가침조약과 폴란드분할에 관한 비밀조약을 맺고 9월1일 폴란드로 침공, 2차대전의 불을 질렀다.
슈테른 지는「히틀러」의 덴마크·노르웨이·베넬룩스 3국 침공에 뒤이어 1940년 5월에 있었던 영국군 21만 5천명 철수작전성공은「히틀러」가 영국과 평화관계를 맺기 위해 독일군의 진격을 중지시켰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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