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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대가' 설득력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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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억달러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의 성격을 달리 규정할 만한 내용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13일 밝혀진 '2000년 6월 12일 중국은행 마카오지점의 북한 은행 계좌 입금'이 그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두 가지다.

북한계좌에 돈이 입금된 날짜가 북한이 국제 관례를 깨고 "정상회담 일정을 연기하겠다"고 일방 통보한 시점(10일)보다 이틀 뒤였다는 것이 첫째다.

약속대로 6월 9일 남한 측이 돈을 보냈으나 주말이 끼여 곧바로 입금되지 않자 북측이 회담연기를 통보했고, 12일 입금이 확인되자 예정보다 하루 늦은 13일 회담 일정이 시작됐다는 가정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북한 측이 12일 중국은행에 우리 쪽이 보낸 돈이 입금됐는지를 확인한 사실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밝혀졌다. 북측이 2억달러를 받는 데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지를 방증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대북 송금이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였다는 가설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게 된다. 덩달아 "정상회담 연기 이전인 6월 9일 송금이 이뤄졌다"는 당시 우리 측 관계자들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둘째는 당시 송금의 종착지가 북한 은행 계좌였다는 것이다. 이 돈이 단순한 남북 경협차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조선무역은행 등 북한 내 은행들로 남한 기업들의 경협 자금이 전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대북 관련 민간사업가는 "현대 등 남한 기업의 경협차원 송금은 북한 은행 계좌가 아닌 북한 회사 명의의 계좌를 통해 이뤄져 왔다"고 말했다.

따라서 남한 측이 보낸 돈이 북한 은행 계좌로 들어갔다는 것은 이 송금이 회사 간의 거래가 아니라 당국 간 합의에 따른 성격임을 의미한다.

당시 우리 측의 송금작업을 국가정보원이 주도했음이 이미 드러난 만큼 북한 측 상대방의 실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금융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당시 송금이 조광무역이나 아태평화위원회 계좌 등으로 이뤄졌다는 보도 등이 있었으나 전혀 사실과 다르다"면서 "2억달러는 북한의 은행 이외에도 여러 개 단체 계좌에 분산된 형태로 보내졌다"고 설명했다.

김경림 당시 외환은행장 등이 특검 수사에서 "당시 국정원의 요청으로 대북 송금을 돕기는 했으나 현대 돈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송금 성격 규명에 결정적 열쇠가 될 북한 계좌 입금 일자와 송금 상대방이 밝혀짐에 따라 향후 특검 수사는 대북 송금의 아이디어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를 규명하는 데 집중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한 정치권 인사는 "당시 정상회담과 관련해 송금을 한 것이 청와대 측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인지, 현대에서 먼저 제안한 것인지를 밝히는 과정이 수사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진배.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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