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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파리 사람 특유의 넉살 좋은 위트가 테러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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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앤드루 허시
런던대 파리분교(ULIP) 학장

2012년 9월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를 외설적으로 묘사한 여러 그림을 실었다. 당시 필자는 튀니스에 있었다. 이슬람 사원 밖에 탱크와 군인이 있었고, 외벽은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서구와 이슬람 증오 세력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혁명을 외치는 낙서로 도배돼 있었다. 튀니스 주재 미국 대사관이 공격받고 미국인 학교가 방화로 소실된 며칠 후였다. 그 바로 전에는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지하드 반군에 살해당했다.

 필자는 30분간 튀니스 중심부인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 초조하게 서 있었다. 통행금지가 떨어지기 전 돌아가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거리엔 유럽인이라곤 혼자밖에 없어 눈에 확 띄었다. 마음속으로 지난 수년간 고의적이고도 불필요한 도발을 계속한 샤를리 에브도를 저주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2006년 덴마크 신문에 처음 등장했던 마호메트 풍자 만화를 재발행했다. 2011년에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패러디한 ‘샤리아 에브도’를 발간해 편집국이 화염병 공격을 받는 일도 있었다.

 지난주 수요일 아침, 우리 사무실에서 20분 거리인 샤를리 에브도 본사가 무차별 총격을 받아 1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파리의 다른 모든 시민과 마찬가지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 중무장한 경찰과 군인이 골목마다 서 있고 군용 차량이 다른 차량을 견인하는 것을 봤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커피숍에 들어가자 모두 TV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TV에서는 경찰관 2명과 스테판 샤르보니에 편집장과 여러 만평가가 목숨을 잃은 대학살 현장을 중계하고 있었다. 필자 옆의 남자가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들었을 뿐”이라고 말을 건네왔다. “무슨 말이오?”라고 묻자 “아랍과의 전쟁 말이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샤를리 에브도는 정당성 없는 폭력의 예상치 못한 피해자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요즘의 파리 사람들에게 샤를리 에브도는 충격을 줄 힘을 잃어버린 1960~70년대의 진기한 유물일 뿐이다. 테러 전날 신문 가판대에 있는 샤를리 에브도 최신호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멍한 표정의 성모 마리아가 더 멍한 표정의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그림이었다. 길을 가면서 요즘 저 잡지를 도대체 누가 보는지, 어떻게 적자를 갓 벗어나기 시작했는지, 어쩌다 박물관에나 진열될 법한 유물이 된 건지를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이번 테러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유명 만평가 두 명의 나이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장 카뷔와 조르주 볼린스키는 각각 76세와 80세였다. 무엇보다 이들은 1968년 5월 혁명 세대였다. 무제한적 자유를 믿고 거리낌없는 성적 표현과 마약 복용을 하는 세대 말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모든 형태의 윤리적·종교적 권위를 조롱할 자유를 굳게 믿으며 드골 정부의 고압적 가부장주의에 반발했다. 샤를리 에브도의 끈질긴 도발(provocation) 추구는 파리 사람들 특유의 전통에 속한다. 이 태도는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창간된 샤를리 에브도를 프랑스 잡지답게 만든 건 바로 전투적이고도 공격적인 세속주의였다. 이 또한 프랑스 문화의 오랜 전통이다. 역사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힘을 견제하는 한 방식이었다. 68년 5월 혁명은 구세대를 향한 청년세대의 저항이었고, 반종교 풍자는 저항의 핵심이었다.

 현재 프랑스에서 68혁명에 가담했던 세대는 문화적 기득권층이 된 지 오래다. 그들이 젊은 시절의 좌파적이고 자유주의적 사상을 아직 신봉한다 해도 기성세대가 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샤를리 에브도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무정부주의를 과시한다 해도 아주 오래전 기득권의 일원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프랑스 주변부 교외 지역에서는 샤를리 에브도를 그렇게 인지하고 있다. 프랑스 주요 도시를 둘러싸며 광범위하게 펼쳐진 교외 빈곤 지역은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프랑스 식민지 이민자들이 상당수 거주하는 곳이다.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는 파리 중심부에선 종교적·정치적 권위주의의 코를 비틀기 위한 풍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교외 지역에서는 자신의 정체성 중에서 아직 프랑스 주류사회에 동화되거나 짓밟히지 않고 남아 있는 유일한 부분과, 마음 깊이 간직한 종교적 신념을 내키는 대로 조롱할 수 있는 주류 권력자의 오만으로 보고 있다.

 수요일 프랑스에서 총격으로 쓰러진 것은 누구에게든 자신의 생각을 발언할 자유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세대다. 파리 사람들은 넉살좋은 기지(wit)에 자부심을 가진다. 늘 권위에 저항해 왔던 이런 태도의 밑바탕에는 생각의 자유와 도발을 즐기는 자세가 깔려 있다. 샤를리 에브도를 향한 끔찍한 살해는 이 모든 것의 정반대에 서 있다. 이는 바로 파리 사람들의 정신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다.

앤드루 허시 런던대 파리분교(ULIP) 학장

◆원문은 중앙일보 제휴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월 7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