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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표는「모」가 죽였다.|자유중국 일간지 중국시보 보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박병석 특파원】전 중공부주석이며 모택동 의 후계지로 지명됐던 임표와 그의 처 엽군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모택동의 지시에 의해 로키트포로 폭사 당했다고 자유중국의 유력일간지 중국시보 가 1일 1, 2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 같은 사실은 미국에서 5월 중순 발간될『임표의 음모와 사망』이라는 책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의 저자인 「야오·밍·리」(요명리의 음역)는 현재 중공에 거주하고 있으나 안전관계로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 책의 원고는 중공에서 몰래 서방으로 운반됐다고 밝히고있다. 중국시보가 보도한 중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9년 3월에 열린 중공 공산당 제9기 1중전 회에서 임표는 모택동의 후계자로 정식 지명됐다. 그러나 1970년8월의 9기 2중전 회에서 모와 임은 국가주석 문제로 심각한 의견대립을 가져왔다. 임표는 마침내 무가정변을 일으키기로 하고 참모총장 황영승 등 군 실력자 4명을 심복으로 포섭하고 모 주석을 살해키로 계획했다. (암호명은 옥탑산 계획).
한편 이와는 별도로 임표의 아들이며 공군작전부 부부장인 임립과는 자기조직을 이용해 모택동을 사살하려는 계획을 꾸민다(암호명 오칠일공기요). 오칠일 공기요의 내용은 1971년 8월 모택동이 남부시찰을 끝내고 북경으로 돌아올 때 미사일을 이용해 모 주석을 폭파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오칠일 계획은 9월9일과 11일 두 차례 걸쳐 행동에 옮기기로 했으나 뒤늦게 이를 안 임표에 의해 저지됐다. 임표는 오칠일 계획이 너무 경솔한 것이라고 지적.
임표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옥탑산 계획으로 합칠 것을 권고했다. 옥탑산 계획에 따르면 모택동이 동남부순시를 끝내고 북경으로 돌아온 직후 의도적으로 중소무장충돌을 일으킨다(충돌시기는 9월25일로 잠정).
임표는 중소 무장충돌을 대대적으로 확대해 모택동을 북경의 옥탑산 피난실로 긴급 피난케 하고 거기서 그를 사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옥탑산 계획은 주은래와 주동흥 등에 의해 정보가 입수되고 모택동에게 보도됐다. 남방 순시중인 9월12일 급히 돌아온 모택동은 그날 하오8시 옥탑산에 있는 모의 별장에서 만찬을 연다. 이에 당황한 임표는 거사일시를 9월17일이나 18일로 변경하고 자기의 처 엽군과 함께 만찬회에 참석한다.
만찬회장에는 강청·주동흥·주은래 등이 참석, 화기애애한 가운데 만찬이 진행됐다. 하오 10시45분 임표부부는 하직인사를 한다. 하오11시 그들이 탄 승용차가 산길을 달릴 때 갑자기 커다란 폭음소리와 함께 로키트 포가 임의 차를 명중시켰다. 차는 산산조각 나고 차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가 폭사했다. 임립과는 부친이 살해된 것을 알고 256호 트라이던트 제트기를 타고 소련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외몽고의 올란바토르 부근해서 추락, 사망한다. 추란 원인은 확실치 않으나 미사일 공격으로 비행기 일부가 파손된 데다 레이다 정찰을 피하기 위해 저공비행도중 산에 충돌, 추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상과 같은 소식은 중공당국이 발표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중공당국은 사고발생 10개월 후인 72년 7월 『71년9월11일 임표는 임이 직접 계획한 모택동 살해음모계획인 「오칠일공정」음모가 누설되자 그의 처와 아들 등을 데리고 256호 트라이턴트 비행기로 소련으로 탈출도중 13일 새벽 몽고국경부근에서 추락, 사망했다』고 밝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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