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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논란' , 학계 본격 논쟁으로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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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올해 초 출범한 "교과서포럼"이 29일 심포지엄에서 강만길, 조동걸, 이만열씨 등 이른바 진보 성향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중앙포토]

한국 현대사는 비판.극복돼야할 역사인가, 계승.발전돼야할 역사인가.

과거사 정리법 제정.친일인사 명단 발표.맥아더 동상 시비 등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불붙은 과거사 논란이 학계의 본격적인 논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29일 오후 보수.자유주의 계열의 학자모임인 교과서포럼은 연세대에서 '한국의 국사학계와 국사 교과서 편찬,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제3차 심포지엄을 연다. 교과서포럼은 앞선 두번의 심포지엄에서 각각 국사 교과서와 경제 교과서가 한국 현대사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자학적 시각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념적으로도 좌편향이라고 비판해왔다.

교과서포럼은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각론적 비판을 넘어 현행 교과서 기술의 토대가 된 국사학계의 역사인식론과 연구풍토에 대한 총론적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보는 기본적 시각을 두고 민족주의에 근간을 둔 한국사학계'주류'에 사회과학.서양사 전공자 위주의 자유주의 계열 학자들이 일종의'선전포고'를 하고 나선 셈이다.

이날 심포지엄의 첫 발표자인 이주영 건국대 교수(미국사)는 80년대 이후 주요한 학파로 부상한'민중.통일 사학'과 여기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강만길.조동걸.이만열 등 국사학계 원로 교수들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 교수는 발표문에서 민중.통일사학과 현 정부의 과거사 정리 사업과 친일파 명단발표 등의 연계성을 언급하며"(이는) 역사학이 국가의 성격과 진로까지 바꾸는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은 역사학이 최근에 심각하게 떠오르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위기와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들 학자들이 민주화.자주화.통일 등을 연구의 촛점으로 삼고 있다며"역사학을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술한다는 근본목표가 아닌 명분.희망.염원과 같은 추상적인 관념 위에 올려 놓게 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통일'을 강조하는 연구경향으로 김구.김규식.여운형 등 해방직후의 중도파들이'과대평가'받고 있고,'자주'의 강조는 자연스럽게 반미적 시각으로 연결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미국을 자주화의 방해물로 보는 태도는 젊은 연구자들에게서 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며 "반면 북한을 점령했던 소련군이나 6.25전쟁에 개입해 한국인에 막대한 피해를 준 중국에 대해서도 비판한 연구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교수는 민중.통일 사학과 학계 주류인 이른바'전통사학'을'한뿌리'라며 비판해 눈길을 끌고 있다. 즉 전통사학이 식민사관을 비판하기 위해 내세운'내재적 발전론'등으로 민족주의가 강조됐고, 이 민족주의의 뿌리가 민중.통일 사학이 번성하는 토대가 됐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박정희 정권의 '민족 주체성'교육과 결합하면서 민족주의는 "어느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절대선이 됐다"는 것.

결론적으로 이 교수는"통일이 되면 근대화.민주화가 이뤄지고, 근대화.민주화가 되면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근거없는 주장이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그 대안으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밝히고 서술한다는 역사학의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그것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고(故) 이병도 교수가 세워놓은 실증사학.문헌고증학의 전통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족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한'자유주의 사학'의 출범을 주장하고, 우리 근대사에서 구체적인 출발점을 서양문명에 영향을 받은 개화파로 지목했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에서 교과서포럼 민중.통일 사학은 물론 전통사학 등 주류 한국사학계를 한묶음로 비판한 만큼 기존 학계의 반박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교과서포럼의 조주현 간사는"심포지엄은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지면과 공개토론 등을 통해 양측의 활발한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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